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또 다시 기약없는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승계 작업을 부정하며 판결을 끌기보다, 형량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훈계를 하면서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5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심리로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받았다.
이날 심리에서는 앞으로 재판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룰지가 논의됐다. 결과적으로 재판부와 양측은 오는 11월 22일 유·무죄와 관련한 심리를, 12월 6일에는 양형 판단에 관한 주장을 듣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양측은 각자 입장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았다. 승계 작업 여부를 가려야하는지 여부에 의견이 엇갈렸다.
이 부회장측은 '승계 작업'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사건 공소장과 대법원 판결, 이번 사건 등에서도 개념을 다르게 사용했다며, 정확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어서 이미 대법원이 승계작업을 포괄적으로 인정한만큼 굳이 다시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며, 양형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증거가 없이도 승계작업이 있었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을 선고한 상황에서 이번 재판에서는 결백을 주장하며 시간을 끌기 대신 양형을 줄이는 데에 중점을 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측은 최근 집행유예로 마무리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확정판결을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문서 송부 촉탁을 요청하기도 했다. 비슷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신 롯데 회장과 형평성을 고려해달라는 의도로 해석됐다.
그러나 특검 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면서 중요한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며 곧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양형을 결정함에 앞서 승계작업이 있었음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다.
롯데 신 회장 확정판결을 증거로 삼는데도 강하게 반발했다. 이미 사건 특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가 된 상태라며, 오히려 삼성그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뇌물을 건낸 사건이 더 밀접하게 관련됐다며 이 사건 문서 기록 촉탁을 신청하며 맞받아쳤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말 세마리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을 뇌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검이 '삼바사태'를 수사하면서 승계작업과 관련한 중요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만큼, 승계 작업이 없었다는 주장도 이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 특검이 확보했다는 증거가 승계작업을 증명할 핵심 증거일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이 직접 지시한 내용이 아니라면 혐의를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사 재량으로 형을 줄여주는 '작량감경' 가능성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신 롯데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 부회장이 일본 수출 규제 등 위기 극복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지지 여론도 크게 늘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이례적으로 '훈계'를 한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날 심리를 마무리하면서 이 부회장에 심리 기간에도 기업 총수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건희 회장이 이 부회장과 같은 만 51세였던 1993년 독일에서 '삼성 신경영'을 약속했던 '푸랑크푸르트 선언'을 예로 들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정 판사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하게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파기환송심은 재판부가 심리를 얼마나 이어나갈지에 따라 결과가 나오게 된다. 만약 다음 2차례 기일에서 결심을 하면 내년초 선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승계작업 여부 등 공방이 이어지면 1년 이상 지체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