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을 향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가 기어이 대한민국 바이오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SK의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은 지난 22일 독자 개발한 혁신 신약 엑스코프리™(XCOPRI®, 세노바메이트정)가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내년 출시가 예정된 엑스코프리는 내년 미국 시장에 출시된다. 업계는 엑스코프리가 5년 안에 1조원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3년 처음 신약개발에 뛰어든 후 무려 27년간 묵묵히 이어온 최 회장의 뚝심이 결국 FDA의 관문을 넘은 토종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탄생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패에도 멈춤없는 투자
엑스코프리는 국내 기업이 중도 기술수출 없이 혁신 신약으로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 신청(NDA)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의 승인을 받은 첫 사례다. SK바이오팜의 목표대로 오는 2020년 2분기 미국 시장 출시되면, 마케팅과 판매 역시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 없이 SK바이오팜의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직접 맡는다.
엑스코프리는 지난 2001년부터 기초 연구를 시작으로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거쳐 FDA의 신약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후보 물질 개발을 위해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 미국 FDA에 신약판매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국내 기업이 자력으로 FDA 신약 승인을 받은 전례는 없었기에, 엑스코프리 사례는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SK라는 모기업의 자금력이 뒷받침이 됐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 회장은 강력한 의지로 제약 사업에 대한 수천억원 규모의 지속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SK가 개발하던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는 임상 1상을 마치고 다국적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 까지 했지만 지난 2008년 출시를 앞두고 FDA승인이 좌절되는 실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회장은 신약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연구개발(R&D) 조직을 더욱 강화했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 직속으로 두었던 신약개발 조직을 분리해 지난 2011년 SK바이오팜을 설립했다. 이후 지난 8년간 SK바이오팜이 R&D에 쏟은 비용은 5000억원에 달한다.
엑스코프리의 개발부터 허가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전 과정을 지휘한 SK바이오팜 조정우 사장은 "이번 승인은 SK바이오팜의 R&D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격적인 성과"라며 "앞으로 뇌전증을 포함해 중추신경계(CNS) 분야 질환에서 신약의 발굴, 개발 및 상업화 역량을 모두 갖춘 글로벌 종합 제약사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종 블록버스터의 탄생
27년 노력의 댓가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업계는 SK바이오팜이 엑스코프리 단일 품목으로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과거 '간질'로 불리던 뇌전증 환자수는 미국에서 올해 기준 286만명에 달하며, 연간 약 2만 명이 매년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올해 49억 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로 오는 2024년 70억 달러(약 8조2000억원) 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측이 공개한 임상 결과에 따르면 엑스코프리의 신약 효과는 우수하다. 미국에선 뇌전증 환자의 약 60%는 치료제를 복용해도 여전히 발작이 계속되는 고통을 받고 있다. SK바이오팜은 1~3개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분 발작이 멈추지 않는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시험에서 엑스코프리는 위약 투여군 대비 유의미하게 발작 빈도를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약물치료를 유지하는 엑스코프리 투여군 28%에서 발작이 발생하지 않는 '완전발작소실'이 확인됐다. 완전발작소실은 환자가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에 돌아갈 수 있게 해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한다는 점에서 뇌전증 신약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엑스코프리의 임상시험 진행에 참여한 마이클 스펄링 신경학 교수는 "엑스코프리의 승인으로 의사들은 부분 발작이 계속되는 환자들에 효과적인 치료요법을 고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엑스코프리를 복용한 환자들에서 발작 빈도가 의미 있게 감소하였으며, 일부 환자들에서 발작이 완전 소실 된 결과를 나타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엑스코프리의 효능과 SK라이프사이언스의 마케팅 실력이 합쳐지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KB증권 이태영 연구원은 "엑스코프리가 탁월한 발작 완화효능을 바탕으로 연간 약가 1만 달러, 처방 대상 환자군 중 시장 점유율 5% 달성에 성공할 경우 최대 1조85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