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조정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안건신속처리제도(패스트 트랙)'에 따라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야당을 향해 '일주일간의 집중 협상'을 제안했지만,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이 패스트 트랙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의원직 총사퇴 전략까지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같은 전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b]◆필리버스터, 정기국회서 막아도 임시국회 열면 명분 사라져[/b]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황교안 당대표가 단식농성 중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패스트 트랙 폭거를 막을 마지막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며 "패스트 트랙 무효 선언만이 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한국당은 지난 4월 여야 4당(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의 패스트 트랙 지정 과정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정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본회의 부의도 무효라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당이 패스트 트랙 법안의 본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 꺼내들 카드가 '필리버스터'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필리버스터는 종료가 선언될 때까지 시간 제한없이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이기도 하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상 본회의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 3분의 1이상(99명)의 서명으로 시작한다. 현재 국회 재적 의원은 295명이다. 한국당 소속 108명의 단독으로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다.
한국당 의원 전원이 12시간씩 필리버스터를 이어간다면 총 1296시간, 54일을 합법적으로 의사진행 저지가 가능하다.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멈추기 위해선 국회 회기가 끝나거나, 재적 의원 5분의 3(177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 의원은 총 129명이다. 패스트 트랙 지정에 공조한 3개 야당 중 정의당은 6석, 평화당 5석에 불과하다. 바른미래 일부가 동참해도 필리버스터 강제 중단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를 거친 안건은 다음 본회의에서 바로 표결하도록 규정한다. 정기국회 회기 종료 후에도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표결이 가능하다. 현재 패스트 트랙에 오른 법안은 선거제도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2건,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등 총 5개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정치·사법제도 개편안을 다음달 3일 이후 본회의에 상정하고 이르면 4일 표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정기회가 끝나는 12월 10일까지 선거법 개정안 처리는 저지할 수 있지만, 곧바로 소집될 가능성이 있는 임시회에서 표결은 막을 수 없다. 또 내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소속 의원 전체가 몇 달 간 필리버스터에 매달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b]◆국회, 어렵게 입성한 만큼 나갈 때 마음대로 못 나간다[/b]
한국당에서 나오는 강경 카드 중 하나는 의원 총사퇴다.
하지만 사퇴도 쉽지 않다. 의원이 사퇴하기 위해선 '사직의 건'이라는 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현행 규정상 사직의 건은 국회 회기 중에는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 과반이 가결해야 사퇴가 가능하다. 회기 중이 아닐 때는 국회의장이 가부를 결정한다. 한마디로 문 의장이 수리해야 사직이 되는 것이다.
사직의 건의 국회를 통과해도 한국당의 '조기 총선 돌입' 전략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 41조 2항은 '국회의원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당은 이 헌법 조항에 따라 의회 해산과 함께 조기 총선 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헌법이 명시한 200인 이상 의석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그친다. 200인 미만이라고 의회를 해산한다는 조항은 없다. 보궐선거를 통해 빈 의석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한국당이 내밀 가능성이 높은 카드는 시간끌기에 불과하다. 황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선 것도 협상 외엔 마땅한 방안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패스트 트랙 법안의 적용 무산 방안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당이 협상에 나서거나, 본회의에서 여야 4당 내 이탈표가 많아 부결 처리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 의석 축소 내용을 담았다.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지역구 의석은 기존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든다. 전국 26곳 선거구가 통·폐합 대상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현재 민주당 내에서도 "(지역구 축소는) 정의당에만 이익"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