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톨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를 둘러싼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양측의 공방은 지난 2016년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대웅제약 '나보타'가 시장에 합류하면서, 메디톡스의 '메디톡신'과 휴젤이 개발한 '보툴렉스' 등 국내 3사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7년 대웅제약에 대한 민사, 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1월에는 엘러간과 함께 대웅제약과 대웅제약의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미국 ITC에 제소했다.
급속한 팽창이 예상되는 글로벌 보톨리눔 톡신 제제 시장에 뛰어든 두 경쟁사에 '균주 주인찾기'는 꼭 풀고 가야할 숙제다. 내년 상반기 시작될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재판을 앞두고 두 기업은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보톨리눔 톡신 제제를 둘러싼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경쟁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좁은 내수 시장을 떠나 4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에서 선점을 위한 진검 승부를 펼친다. 대웅제약 '나보타'는 미주와 유럽 시장에 발을 들였고 중동 시장을 공략 중이며,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시장으로 발을 넓혔다.
◆미국에서 발발한 전쟁
나보타와 메디톡신 전쟁도 사실은 해외 시장 진출이 시발점이 됐다는게 업계 평가다. 국내 보톨리눔 톡신 시장에선 후발주자이던 대웅제약이 메디톡스보다 먼저 해외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메디톡스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메디톡스가 개발한 '메디톡신'은 지난 2006년 국내 처음 선보인 보톨리눔 톡신 제제다. 대웅제약은 8년이 지난 2014년이 돼서야 나보타 허가를 받으며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다.
해외 시장에 먼저 발을 들인 것도 메디톡스다. 지난 2013년, 메디톡스가 '보톡스'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엘러간에 액상형 보톡스 제품인 '이노톡스'를 기술수출하며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진행은 더뎠다. 엘러간이 5년이 지난 2018년 10월이 돼서야 이노톡스 임상 3상을 시작한 것이다. 유럽 임상은 그로부터 6개월이 더 지난 올해 6월 부터 시작됐다. 엘러간은 내년 임상을 마무리한 후, 오는 2022년 미국시장에 이노톡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 사이 대웅제약은 해외 시장 승기를 잡았다. 나보타는 올해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미간주름 적응증에 대한 판매 승인을 받고, 지난 5월 '주보'라는 제품명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 10월에는 '누시바'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 공식 출시해 북미 시장 장악에 나섰다. 앞서 9월에는 유럽의약품청(EMA) 판매 허가를 받아 내년 유럽 시장에도 진출을 앞두고 있다.
'대웅제약이 보톨리눔 톡신 균주를 훔쳐갔다'는 메디톡스의 소송도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7년 6월 캘리포티아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메디톡스의 소송을 각하했다. 나보타의 미국 진출이 가시화된 올해 1월, 메디톡스는 ITC에 대웅제약을 제소했다. 공교롭게도 대웅제약이 미국 FDA의 허가를 받기 이틀 전이었다.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막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추측도 여기서 나온다. 양사는 현재 ITC가 요구한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내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해외시장 선점에 달렸다
전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약 4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미국이 절반 규모인 2조원, 미국과 유럽을 합칠 경우 전세계 보톨리눔 톡신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국내 보톨리눔 톡신 제제가 좁은 내수 시장을 떠나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해외 약 60개국에 메디톡신을 수출하고 있는 메디톡스는 지난 3분기 보톨리눔 톡신 제제만으로 14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중 수출이 854억원을 차지한다. 지난해에는 해외 수출 규모가 1333억원으로 보톨리눔 제제 전체 매출의 65%를 차지했다.
대웅제약도 나보타를 앞세워 해외 자금을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주보 판매를 담당하는 에볼루스에 따르면 주보는 지난 3분기 현지에서 153억원의 첫 분기 매출을 올리며, 미국 보툴리눔독소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랐다. 주보의 매출액은 올해 400 억원 수준에서 향후 3 년 동안 1000 억원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선점 기회를 놓친 메디톡스는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메디톡스는 지난 9월 중국에서 '뉴로녹스'라는 제품명으로 허가 심사를 메디톡신의 허가심사를 마쳤고, 현재 최종 시판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메디톡스가 중국에서 최종 허가를 받으면, 국산 보툴리눔 톡신 중에선 처음 중국에 진출하게 된다. 메디톡스는 뉴로녹스가 올해 중국에서 허가를 받으면 오는 2021년까지 시장점유율 20%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현재 중국에서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나보타는 할랄 시장으로 보폭을 넓혔다. 대웅제약은 최근 아랍에미리트와 인도네시아에서 나보타의 품목 허가를 잇따라 획득하며, 중동 국가로 허가를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와 인도네시아에는 내년 상반기 부터 판매가 시작된다. 전세계 할랄 인구는 약 19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24.9%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