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지대 대방동 모습. /손진영 기자 son@
카페처럼 잘 꾸며진 공간 속에서 테이블에 앉아 책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인터넷 강의를 듣는 사람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뒤로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량진 인근에 위치한 탓에 각종 시험 공부를 하는 사람들부터 독서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여느 카페와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무르는 시간에 상관없이 공간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달 19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무중력지대 대방동을 찾았다. 이곳은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사회의 억압(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청년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이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청년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사업으로 '서울특별시 청년 기본조례'에 근거한다. 서울시에 금천구, 양천구, 동작구, 도봉구, 성북구, 강남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등 총 9곳의 무중력지대가 위치한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1층의 모습. /손진영 기자
이날 만난 무중력지대 대방동 안현종 센터장은 "요즘 대학 졸업 이후 취업까지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그런 단계에서 청년이 원하는 게 단순히 취업 자체가 아니라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무중력지대는 서울시에 이같은 문제제기를 한 결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청년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공간은 음료값 등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인데, 무중력지대는 돈을 내지 않아도 시간제한 없이 있을 수 있고 오히려 그분들이 우리의 공간을 채워주는 VIP"라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무중력지대 대방동에는 하루에 70명에서 100명 정도가 꾸준히 방문한다.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더 많은 인원이 찾는다. 방문자는 학생과 취업준비생이 대부분이며,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친구랑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기도 한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지하 1층의 모습. /손진영 기자
이날 둘러본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층별로 우주 관련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기 다른 특색을 보였다. 편안함을 우선시했다는 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1층 '지구'에는 스피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 몇몇 청년들이 책과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좋은 글귀와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도 한데 모여 있다. 컴퓨터와 인쇄기도 이용 가능하다. 한쪽에는 '나눔부엌'이라는 조리 공간이 위치해 대관을 통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지하1층 '인공위성'은 탁구와 오락을 할 수 있고, 누워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마련돼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2층 '은하수'는 조용한 분위기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아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3층 '기지국'에는 청년활동 지원 본부가, 4층 '우주정거장'에는 청년입주팀이 업무를 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청년들이 무중력지대를 찾는 이유에 대해 함금실 활동지원 매니저는 "이 공간이 가지는 편안함 때문에 오는 것 같다"며 "지나가다가 카페인줄 알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이용한 사람에게 공간에 대해 물어보면 '되게 편안하다'라는 반응을 듣곤한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도 "우리 공간은 뭐랄까 부담이 없는 공간"이라며 "여기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무중력지대를 통해 원하는 걸 이뤄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을 잘 이용한 후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함 매니저는 "2015년 무중력지대 대방동이 문을 열었을 때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4명이 찾아와서 거의 일 년 내내 이곳에서 공부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오지 않다가 오랜만에 와서는 4명 모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며 "중력 진입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졸업장을 건넸다"고 회상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감사의 표시로 책 100권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사례도 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청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중 청년들이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활동비와 네트워크를 지원해주는 '왓에버 프로젝트'는 무중력지대 직원들이 뽑은 자신 있는 사업 중 하나다. 3인 이상으로 구성된 10팀을 모집해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 2018년 '청년케어러'라는 이름으로 왓에버 프로젝트에 참가한 조기현 씨는 아픈 가족을 돕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다. 첫 책 '청년이 간병할 때'를 무중력지대 대방동과 함께 작업한 조 씨는 20대 초반부터 8년간 아픈 아버지를 돌봤다. 배움을 위해 모은 돈을 병원비로 지출하고 고립감을 느꼈던 많은 순간들을 책에 담으며 자신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사회 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조 씨는 강의를 꾸준히 진행하고, 라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사회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메뉴판을 제작해 동작구 주변 식당에 배포하는 프로젝트, 아카펠라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물하는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이 왓에버 프로젝트를 거쳤다.
이외에도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청년 강사를 선발해 강의를 진행하는 '과시적 클래스', 취업 역량 강화를 위한 '진취적 취준학교', 다양한 분야의 상식을 전해주는 'TMI 스쿨'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에서 일하는 직원들. 조영주 교육지원 매니저, 함금실 활동지원 매니저, 안현종 센터장(왼쪽부터). /손진영 기자
끝으로 청년들과 많이 마주치는 이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청년이란 단어의 의미를 물어봤다. 안 센터장은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는 찬란한 시절인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희생하고 힘들어해야 하는 시절이라는 게 안타깝다"며 "과거에는 다 힘들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비슷하게 올라갔는데 지금은 차이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 매니저는 "요즘 청년은 안정된 삶을 살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대인 것 같다"며 "어릴 땐 30대가 되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0대에도 여전히 방황하고, 우리가 원하는 문은 더 좁아진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청년을 지원하는 정책과 공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인 모습으로 바라봤다.
조영주 교육지원 매니저는 "청소년기가 지난다고 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건 극소수라고 생각한다"며 "청년기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말을 마쳤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손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