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징계 최종통보까지 현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회장·행장을 겸직했던 손 회장이 물러날 경우 발생할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6일 열린 임시 간담회에서 "기관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절차가 남아 있고 개인에 대한 제재가 공식 통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그룹 지배구조에 관해서도 기존에 결정된 절차와 일정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의 연임의지가 강해 금감원 제재심에 대한 재심 신청이나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판례상으로도 지난 2009년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받은 중징계와 관련해, 행정소송을 통해 최종 승소한 사실이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함영주 부회장의 행보도 법적 대응으로 좁혀질 전망이다. 사실상 차기 회장 유력 후보인 함 부회장으로선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안정화를 꾀해야 하는 입장이다. 김정태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중징계 법적근거 미약…당국은 '책임 전가'
금감원의 이번 은행 CEO 중징계는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다. 금융사의 자율경영에 제동을 건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문제는 과연 DLF(파생결합상품) 판매때 드러난 일부 불완전판매에 대해 CEO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그리고 법적 근거가 있느냐다.
금감원이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를 내린 데는 DLF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은행의 내부 통제 부실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본점 차원의 영업 압박과 리스크 관리 부재로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는 소리다. 이는 우리·하나은행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부 통제 부실의 문제를 들어 최고경영진(CEO)을 끌어내릴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번 결정의 근거가 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금융회사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이 나와 있다. 그러나 법규에 내부 통제 기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금융사 임원을 제재할 근거는 없다. 금융권에서 경영진을 퇴출하는 결정을 하기엔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해, 내부 통제 소홀로 다수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임원을 제재할 근거를 마련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경영진 중징계를 강행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책임을 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금감원은 DLF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기회가 다수 있었다. 금감원은 지난 2018년 10월 파생상품 판매 실태 등에 대한 미스터리쇼핑(암행 감찰)에 나서 우리·하나은행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개선을 통보하는 데 그쳐 DLF 사태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 행장 후보추천도 논란
손 회장이 '문책경고'를 받으면서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 일정이 잠정 연기된 가운데 행장 후보추천은 낙하산 논란에 휘말렸다.
당초 우리금융 임추위는 차기 우리은행장 최종후보 3인으로 김정기 우리은행 영업지원부문장, 이동연 우리 FIS 대표,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 등을 선정해 지난달 말 최종후보 1인을 뽑을 예정이었다. 세 후보들 가운데선 김 부문장이 가장 유력한 차기 행장 후보로 대두됐다. 한일은행 출신인 손 회장의 뒤를 이을 상업은행 출신 내부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임추위는 차기 은행장 추천을 하지 못했다. 이를 놓고 청와대 실세의 지원을 받는 권 대표를 밀어주려는 IMM PE측 사외이사와 김정기 부문장을 추천하려는 손 회장 간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한편 우리은행은 DLF부터 키코(KIKO)사태 까지 금감원의 모든 조정안을 받아들였음에도 아무런 실익을 챙기지 못한 꼴이 됐다.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설지 의문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우리은행은 지난주 키코 사태와 관련해 이사회를 열고 피해기업인 재영솔루텍·일성하이스코 두 곳에 42억원을 배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오는 7일인 키코 배상 여부 결정 시한을 한차례 더 연기해 달라고 금감원에 요청했다. 키코의 경우 다른 피해기업과의 자율조정 가능성을 고려하면 배상금액이 훨씬 불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금융당국의 모든 조정안을 받아들였지만 고스란히 부담만 안게 됐다"며 "적절한 유인책이 없다면 향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금융사의 적극적인 배상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오는 7일 정기이사회에서 향후 그룹 지배구조 문제 등을 포함한 일반적인 사항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