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재 변호사의 IT 인사이트] 맹목적인 형사 고소 병행, 최선일까
법은 강제성 있는 규범이다. 크게 두 가지 강제수단이 있다. 첫째, 법위반행위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사적집행), 둘째, 국가가 나서서 법위반행위자를 처벌하는 것(공적집행)이다. 사적집행이 자연법에 가까운 수단이다. 공적집행은 처벌 근거법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인위적인 제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법 정서는 공적집행쪽이 더 가까운 듯하다. "법대로 하자"는 사람은 대개 경찰서 등에 신고를 한다. 처벌권을 갖는 국가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정서가 기업인들에게도 남아있다. 돈을 받아내는 수단인 민사소송만 하는 것보다 처벌 리스크까지 안겨주는 형사 고소를 병행하는 것이 더 실효적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민사에서는 피해자가 원고가 되어 가해자를 직접 추궁하는 반면, 형사에서는 피해자 대신 국가가 그 역할을 한다. 민사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내 일'을 하는 것인 반면, 형사절차를 진행하는 국가는 '남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내 일'과 '남의 일'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내 일'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처리가 빠르다. '남의 일'은 '남'에게 일일이 사정을 들은 후 처리하기 때문에 느릴 수밖에 없다. 피해자에게 빙의(憑依)한 듯 형사 고소사건을 적극적으로 처리해주는 수사관은 드물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익적으로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않다.
통계적으로 피해자가 형사 고소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낮다. 명백한 위법이 드러나지 않는 한 국가는 처벌권을 행사하는데 신중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는 민사에서 승소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게다가 민사소송 자료는 쌍방에게 즉시 공유되어 피해자가 가해자의 '패'를 알 수 있지만, 형사사건에서 가해자가 낸 자료는 참고인에 불과한 피해자에게 좀처럼 공유되지 않으므로 피해자가 '깜깜이' 상태일 때도 많다. 국가를 움직여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피해자의 손으로 직접 민사소송을 하는 것이 통상 더 효율적이다.
물론 국가의 도움을 꼭 청해야 할 때도 있다. 가해자가 도망가버려 잡지 못했거나, 가해자에게 돈이 없어 민사소송의 실익이 없거나, 배상 이외에 처벌이 꼭 필요하거나, 피해자에게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IT 업계에서도 민사로 대응할지 형사로 대응할지 고민되는 사례가 많다. 경쟁사가 내 서비스를 베꼈다거나, 인력이나 영업비밀을 빼갔다거나, 거래상대방이 도를 넘은 갑(甲)질을 하는 등이다. 민사와 형사의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저 둘 다 하면 좋겠지 싶어서 덥석 형사 고소를 병행했다가 무혐의 처분이라도 내려지면 가해자는 기고만장해지고 민사소송에도 악영향이 미친다. 내 일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의 손에 맡기는 것이 때로는 나쁜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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