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서울 구로구 개봉동 A약국 앞에 50m의 긴 줄이 늘어섰다. 줄을 선 사람들은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81세라고 밝힌 김씨는 "이렇게 줄을 서도 2개 밖에 못사지만, 일을 나가느라 그나마 줄도 못서는 자식들을 위해 왔다"고 했다. 9시 약국이 문을 열었지만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약사는 "마스크는 오늘 오후에 도착 예정입니다. 1·6년생은 미리 신분증을 준지해주시고, 사실 분만 밖에서 대기해주세요"라고 했다. 추위에 지친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약사는 "마스크가 언제 오는지 우리도 몰라서 어쩔 수 없다"고 사과했다. "번호표라도 나눠달라"는 제안에 약사는 "나라에서 번호표를 나눠주지 말라고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아진건 전혀 없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공적 마스크 구매 대란을 줄이기 위해 9일 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지만 기다림과 실망은 여전했다.
서울 중구의 약국에 근무하는 허씨는 이날 오전 "마스크가 아직 입고 되지 않았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것도 이전과 같다"며 "구매 대기 줄은 여전히 길고 나아진건 하나도 없는데 마스크가 왜 없냐는 문의만 10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마스크 구매가 여유로워질 것이라 기대하며 신분증을 챙겨 나온 시민들도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지병이 있다는 이씨(63세)는 "정부가 5부제로 마스크를 살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해서 몸이 아픈데도 왔는데 또 허탕을 쳤다"며 "노인들이나 환자들이 나와 이렇게 추운데 줄을 서는데 정책가들은 탁산공론만 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5부제 시행에 대한 규정을 몇차례 변경하면서도, 약국에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아 혼란은 가중됐다.
O약국 약사는 "정부가 약사들에 공지를 하고 가이드라인을 주기 전에 뉴스가 먼저 나온다"며 "대리구매는 관계 증명이나 신분을 확인을 하는 과정이 복잡한데, 소비자들이 따져도 우리가 제대로 아는게 없으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C약국 약사는 "엄마가 자신의 마스크를 사고, 아이의 마스크를 대리구매 하려면 두번 줄을 서야하는지, 한번에 아이 몫까지 살 수 있는지도 공지사항이 다르다"며 "2011년생 아이 여권을 들고와서 연도만 확인하면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우기기도 하는데, 약사들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몰라 서로 묻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 팔다 하루가 다가
공적 마스크 물량 부족으로 인한 고통은 모두 약사들의 몫이 됐다. 마스크 수량 부족으로 인한 분노가 약사에게만 향하는 탓이다.
C약국 약사는 "매일 마스크가 배달되는 시간도, 몇매가 오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만접수는 우리가 다 감당해야한다"며 "입구에 아무리 써붙여놔도 갈수록 화가 나는 소비자들의 폭언과 욕설이 심해져 정말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5부제 시행 후 업무는 더욱 가중됐다. 마스크 판매로 다른 업무는 마비되는 일이 다반사다.
G약국 약사는 "일일이 고객들 신분증과 구비 서류를 확인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시스템에 입력해야하는 것도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잘못 알고온 고객들에 설명해 돌려보내고, 줄 서다 돌아가는 사람들을 감당하는 것도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O약국 약사는 "마스크만 팔다 하루를 다 보내지만 마스크 한장에 고작 200원 남는다"며 "카드로 결제하면 그마저도 안남고, 다른 처방은 잘 받지도 못하니 손해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를 막기 위해 살길도 강구해야 한다. 인천 소재의 동네 약국은 줄을 선 사람들을 위해 대기 노트를 만들었다. 마스크 구매자들이 약사가 건낸 노트에 이름과 주민번호, 전화번호를 적으면 마스크 입고 후 연락해 판매한다. 중구에 한 약국은 카카오톡과 연계해 마스크 입고를 알려주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약사는 "매번 줄을 선 고객들의 항의를 감당하기 힘들어 자비를 들여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약국에는 손해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소분 판매 위생 '경악'
마스크 소분 판매도 첫날 부터 큰 문제가 됐다. 5매씩 묶여 포장되는 마스크를 약사들이 소분해 2매씩 판매하면서 위생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정부는 전일 소분포장용지와 2개 포장 마스크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약국 약사는 "마스크를 소분할 때 위생을 위해 비닐장갑을 착용하라는 공지를 받았다"며 "비닐장갑이 위생을 얼마나 지켜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중구에서 마스크를 구매한 김모씨는 "약사가 박스에 쌓아놓은 마스크를 핀셋으로 집어서 비닐봉지에 넣어줬다"며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구입하는 마스크인데 이렇게 배급을 받으니 불안감이 되레 커졌다"고 지적했다.
소분포장도 약사들 업무를 과중시키는 요소가 됐다.
G약국 약사는 "오늘 새벽, 마스크를 하나하나 포장을 뜯고 2매씩 따로 포장했다"며 "국가에서 포장지나 장갑을 지원해주지도 않아 온전히 약국에서 비용처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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