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배우의 가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배우들이 그리스 신들을 대신하는 역할을 할 때 각 신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일종의 제사처럼 진행된 연극 이후 자신이 쓴 연극의 가면을 태우는 제례를 거행했다. 이는 자신의 역할과 실제 현실의 자기를 구분하는 일종의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이 때 배우가 맏은 역할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면을 썼고 이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이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분석심리학을 주창한 칼 구스타브 융이 사용하면서 라고 볼 수 있다. 융은 페르소나는 일종의 사회적 가면 혹은 사회적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외적 상황에서 외현적으로 보이는 어떤 성격으로서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여러 가지의 페르소나를 가질 수도 있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의미 때문에 융이 사용한 의미처럼 어떤 내면적인 것을 대신하거나 한편으로는 내면과 분리된 겉에 드러난 어떤 인간의 특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후세에 인간의 내면이 겉으로 들어난다는 의미를 띄기 시작하여 차후에는 인간 내면의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성격(Personality)라는 용어의 어원이 된다. 이런 면에서 가면이라는 표면적인 것을 지칭하는 의미가 차후에는 우리의 내적 특성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면을 쓴다'라는 표현은 그 사람이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는 것이며 사기이며 진실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사실 우리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 것도 일정 정도 자신의 성격이라는 가면을 자기 자신으로 믿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얼굴에 어떤 성격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통찰 할 수 있다.
하지만 간혹 우리를 비춰주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왜곡되어서 오히려 자신이 쓴 가면을 정확하게 못 보게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직 성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모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쉽게 왜곡된 모습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과 가면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성인으로 성장하기 쉽다.
융은 이러한 불일치는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되어 그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가면을 전혀 쓰지 않는 다는 것도 건강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특정한 역할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수행하게 되는데 하나의 가면만으로 산다면 그 사람은 마네킹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생각해보자. 밖에서야 과장이지, 집에서도 과장은 아닌 것이고 밖에서야 선생님이지, 집에서도 선생님이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페르소나와 자신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통 나이 든 어른들이 젊은 세대로부터 '꼰대'라는 말은 듣는 것은 이러한 페르소나를 구분하지 못해서일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