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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국방/외교

전쟁기념관, 7월의 호국영웅에 고길훈 해병 소장 선정

한국전쟁 참전 당시 고(故) 고길훈 해병 소장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가 처음 참가한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고(故) 고길훈 해병 소장이 전쟁기념관이 선정하는 2020년 7월의 호국인물로 올랐다.

 

1922년 7월 10일 함경도 영흥군에서 태어난 고 소장은 경복중학교를 거쳐 1944년 9월 일본 명문 사학인 도쿄 메이지(明治)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광복 이후 귀국한 그는 1946년 10월 28일 특임으로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고 소장은 한국전쟁 발발이전에 해병대 창설과, 공비 토벌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1949년 4월 15일 해병대 창설에 참여해 초기 해병대의 체제 정립에 기여한 그는 9월 소령으로 진급했고,경남 진주 등 지리산 일대와 제주도에서 해병대를 이끌고 공비토벌 작전을 수행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은 남침개시 한 달도 되기 전에 호남지역까지 남하했다. 같은 해 7월 15일 해군본부는 호남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대기하던 해병 300여 명을 '고길훈 부대'로 명명하고 고길훈 소령에게 지휘를 맡겼다.

 

고길훈 부대는 군산지역에 상륙해 부족한 병력과 일본군이 버리고 간 99식 소총 등 낡고 열악한 화기를 가지고, 5일 동안 군산·장항·이리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했 다. 이 과정에서 고길훈 부대는 군산항에 적재된 정부의 재산이었던 양곡(쌀)을 LST 안동호로 안전하게 실어 날랐다. 고 소장의 부대가 이를 놓쳤다면 양곡들이 북한군의 군량미로 넘어갔을 것이다.

 

전투 중 고길훈 부대는 35명이 전사하고 상당수 병력이 부상을 입었지만, 북한군 56명을 사살하고 포로 4명 얻는 전과를 얻었다. 이 공훈으로 전북 군산시 월명공원에는 그의공적을 기리는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적비'가 1990년 세워졌다.

 

이후 고 소장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연희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해병학교장·제1해병연대 부연대장 등을 역임했다. 휴전 후에는 제1여단장과 제1상륙사단장 등을 역임한 후 1963년 12월 해병소장으로 예편했다. 1981년 2월 14일 향년 60세를 일기로 타계해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됐다.

 

그는 해병대의 첫 전투인 군산·장항·이리 지구 전투를 승전으로 이끈 공적으로 1952년과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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