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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국방/외교

중공군에 맞서 싸운 전사자, 69년 만에 신분 밝혀져

고 명한협 일병 결혼식 당시 사진 사진=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이 항미원조 70주년을 기리며 중공군의 추도에 열을 올리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과 맞서 이 강토를 지켜낸 한 전사의 유해가 신분이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가 고(故) 명한협 일병(현 계급 일병)으로 신원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고 명한협 일병은 6사단 소속(추정)으로 가평-화천 진격적을 치른 후 1951년 6월 20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평-화천 진격전은 국군 6사단이 중공군(제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경계부대인 6사단 2연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공격으로 전환했다.

 

6사단은 가평 북측으로 패퇴한 중공군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Km가량 진출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고 명한협 일병은 후배 전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퇴부, 윗팔 부분의 유해 일부만 발견됐다. 유품 한점 남기지 않은 고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발굴 당시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2010년 아들인 명갑원 씨(72)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기에 10년의 시간이 흘러, 유전자 비교분석을 통해 신분확인이 가능했다.

 

고 명한협 일병은 1925년 8월 28일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남 고 명한협 일병은 아내 이분악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명갑원 씨를 키우며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중공의 인해전술로 1951년 1.4후퇴로 조국의 명운이 바람 앞 촛불의 상황이 되자, 그해 2월 고인은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군에 입대해 한국전쟁(6.25)에 참전했다. 아내 이분악 씨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 명갑원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면서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신원확인이 된 한국전쟁 전사자는 고 명한협 일병까지153명뿐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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