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조원 신화를 만든 한국 바이오 업계의 전설이 조용히 떠났다. 2020년을 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지난 20년 간 K-바이오 성장을 위한 단단한 주춧돌을 세운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를 마지막 선물로 남겼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사진)이 지난 달 31일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별도의 퇴임사도, 퇴임식도 없는 조용한 퇴장이었다. 퇴임 이틀 전인 29일 서 회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렉키로나주'의 조건부 사용 허가를 신청했다. 지난 3월 치료제 개발을 시작한다고 발표한지 9개월만에 이뤄낸 성과다.
서 회장은 당시 "경제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개발 절차를 거치더라도 국민들의 공포를 하루 빨리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9월 임상을 마무리하고, 연내 식약처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다. 이미 자체 생산시설을 통해 지난 9월 부터 렉키로나주의 생산을 시작한 덕에, 국내에서는 내년 1월 부터 코로나19 치료제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지난 2000년, 직원 10명과 함께 벤처기업 '넥솔'을 창업했던 40대 서 회장은 지난 21년간 새로운 K-바이오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2020년 주식시장의 마지막 날, 셀트리온그룹 3형제(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의 시가총액은 무려 82조원에 달한다. 코스피 시장 시총 2위이자, 연 매출 30조원 규모의 SK하이닉스(86조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2008년 코스닥 시장에 처음 입성한 셀트리온은 12년 만에 50배 이상 성장을 이루며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성공의 신화'를 안겨줬다.
서 회장이 마지막을 준비하던 2020년은 그룹에는 기록적인 해였다. 셀트리온은 지난 해 3분기 까지 1조원이 넘는 최고 실적을 달성하며, 바이오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서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020년 한 해 셀트리온의 매출액은 1조8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대비 무려 66% 성장한 규모다.
서 회장이 지난 2002년 셀트리온을 처음 설립하던 때부터 끊임없이 얘기해 온 '종합제약사'의 꿈도 기어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 서 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를 설립하고 셀트리온그룹은 올해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3사의 합병을 마무리해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3사가 합병할 경우 의약품의 연구개발부터 마케팅 및 직접판매 유통망까지 갖춘 초대형 제약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그룹를 떠난 63세 서 회장은 다시 벤처 창업자로 돌아간다. 회사측에 따르면 서 회장은 은퇴 후 유비쿼터스 헬스케어(원격진료) 분야 스타트업을 창업할 계획이다. 서 회장은 그동안 간담회 등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퇴임 후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려 한다"며 "북유럽에서 헬스케어 관련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 회장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신임 이사회 의장이 선출될 때까지는 공식 직함을 유지하며, 이후에는 무보수 명예회장으로 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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