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은 오는 3월 5일부터 온라인으로 '2021년 서울역사강좌'를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강좌는 '코로나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를 주제로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서울 사람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21세기 우리는 많은 일을 집 밖에서 해결했다. 업무를 보기 위해 회사에 가고, 친구는 카페에서 만났으며,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 등 삶의 통과의례 역시 집 밖에서 치렀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은 어땠을까?
오늘날 집은 대단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은 조부모, 부모, 손자까지 3대는 기본이었으며 양반들은 노비들까지 한집에서 함께 살았다. 인구가 과밀했던 한양에는 주택이 빽빽이 들어섰고, 공간이 좁다 보니 꺾음집 같은 한양만의 스타일도 만들어졌다.
건물로 집을 올리기도 어려웠지만, 집을 운영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묵재일기'를 쓴 한양선비 이문건은 말 안 듣는 노비 덕에 하루가 멀다 하고 속을 끓였다. 이와 달리 병자호란 때 피난길에 오르며 '병자일기'를 남긴 남평 조씨 부인은 노비들의 도움을 받아 지방에 있는 농장을 잘 경영한 덕에 끼니 걱정 없이 가계를 운영할 수 있었다.
한양 사람들에게 집은 생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18세기 서울의 독서인 유만주는 책을 읽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흠영'에는 책이 가득한 서재를 꾸리는 상상을 했던 순진한 선비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선비들은 괴석, 다양한 꽃을 심은 화분, 석류, 매화, 좋은 목재를 골라 만든 가구로 집을 꾸몄다. 잘 꾸린 집에서 술 한 잔 함께 할 벗을 초대하는 풍류도 있었다.
한양사람들과 현대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집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한양의 집값은 조선시대에도 비싸서 지방 출신 선비들은 과거에 붙어도 머물 집을 구하지 못해 셋방살이를 했다. 어렵게 집을 마련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집주인이 갑자기 나타나 소유권 분쟁도 왕왕 벌어졌다. 이와 달리 고위층 관료의 집안일을 도와주며 한양 토박이로 부를 축적한 중인들도 있었다. 집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한양에는 집 중개인인 집주릅(가쾌)이라는 직업도 생겼다.
강의 내용은 책으로 발간돼 2월 말부터 서울책방에서 1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에 접속해 '서울역사 함께하기', '서울역사강좌'를 차례로 클릭하면 수강신청과 관련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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