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국회의원을 만나 사적인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그 의원에게 "왜 국회의원들은 허구한 날 그렇게 서로들 치고받고 싸우냐"고 했더니 "국민 대신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것이다. 볼썽 사나울 수도 있겠지만 국민이 서로 갈리고 나뉘어 으르렁대는 것보다 낫지 않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광경이 21대 국회에선 보기 힘들다. 전체 300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등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 체제가 돼, 사실상 야당과의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300석 중에 180석은 약 60%다. 여당은 이에 대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당의 모든 행동에 이런 명분을 가져다 붙인다.
하지만 엄밀히 얘기해서 국민 60%의 지지를 받은 건 아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정당별 지지율만 보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이 49.9%,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41.%를 받았다. 여당은 이런 지지를 기반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나머지의 의견을 묵살한 채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른바 승자독식이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도 된다는 인식은 여러 곳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데 야당 동의 없이 여당 단독으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장관은 무려 27명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4·15 총선 이후 두드러졌다.
가덕도 신공항도 법에서 정한 예비타당성조사나 국토교통부·환경부 등 정부 부처의 의견이 묵살되고 여당의 의지대로 밀어부치기가 강행되고 있다.
'검찰개혁'은 거의 화룡점정 수준이다. 검찰총장이 여당의 말을 안 듣는다며 탄핵하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징계를 추진했다가 법원에 제동이 걸리자 아예 검찰이란 조직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다. 검찰총장 징계를 무효화한 법원에는 '적폐'란 말도 서슴지 않았다.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기소와 수사를 분리하자는 명분은 얼핏보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또 다른 검찰청을 만들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이름만 바꿀 뿐이다. 한 칼럼니스트 말대로, 기자들 상황에 빗대어보면 취재와 기사작성을 다른 사람들이 한다는 얘기다. 수사하는 사람들은 수사만 하고, 그 다음 일은 책상에 앉아 서류만 보고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비효율의 공무원 조직이 등장하는 셈이다. 자칫 공권력의 횡포, 탁상행정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힘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한 나라의 재정을 책임지는 부총리에게도 여당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며 험한 말을 입에 담았다. 국가채무를 걱정해야 하는 게 당연한 부총리는 사표를 몇번씩 냈으며, 지금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했다.
현 여당의 주류는 소위 586세대다. 이들은 한 때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며 정의를 외쳤던 이들이다. 과거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며 정의를 외쳤던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란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여당의 주류는 당시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떼로 몰려가 그런 사람을 짓밟고 있다. 이게 그들이 바랐던 민주주의였고 그들이 바랐던 미래였나. 그들이 예전에 그토록 울분을 토했던 '적'들의 모습과 무슨 차이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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