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지음/유유
나는 한국에 살지만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내국인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당신이 어디 있건 1분 만에 증명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앉은 자리에서 옆 사람이 하는 말을 키보드로 메모장에 옮겨 적어보자. 그리고 큰 소리로 읽어본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란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어디 말 뿐이겠는가. 연구 보고서랍시고 내놓은 논문은 비문이 흘러넘쳐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 번역서라고 출판한 책에는 국적 불명의 문장을 잘도 갈겨놔 '원문으로 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다. 독일어나 한국어나 이해 안 되긴 매한가지다. 나름 체에 한번 걸러져 나온 글이 이 수준이니 일상에서 쓰는 말은 더 별로일 수밖에.
한국인이 한국어를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어를 제대로 익힐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은 모국어를 잃고 평생 0개 국어 구사자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낙담하긴 이르다. 여기 당신의 한국어 실력을 한 단계 높여줄 책이 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바로 그 주인공. 제목부터 흥미롭다. 저자는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다른 이의 글을 다듬어온 '교정 숙수'다.
'차례'에서부터 고수의 아우라가 풍긴다. 첫 장을 펼쳐보자.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주의하라." 저자는 접미사 '-적'과 조사 '-의', 의존명사 '-것', 접미사 '-들' 이 4가지만 문장에서 들어내도 글이 한결 나아진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기술적 요인'은 '기술 요인'으로 '정비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정비사업 환경영향평가'로, '동참해 주실 것'은 '동참해달라'로, '차주들'은 '차주'로 수정하면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와 동사로 사용하는 '있다'도 적당히 좀 쓰라고 그는 일갈한다. 저자의 조언대로 '되살아난 서울 - (85) 백사실 계곡'(본보 3월10일자) 기사를 고쳐봤다. '새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은 '새 옷을 갈아입는 중'으로, '마을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는'은 '마을과 멀리 떨어진'으로 군더더기를 덜었다. 글이 담백해졌다. 바쁜 사람은 책을 사서 목차만 꼼꼼히 읽어봐도 된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등 책장이 20쪽도 넘어가지 않았는데 정곡을 찔려 뼈를 맞은 듯 아프다. 204쪽. 1만2000원.
추신 : "그런데 당신 기사는 왜 그 모양이죠?" "아, 예에." (책 9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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