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이동 제한 조치와 봉쇄령에 자영업자와 저소득 근로자는 위기를 겪었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대기업 근로자·전문직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피해를 입은 자국 국민에게 현물·현금 지원을 했다. 이를 위해 대부분 국가들은 언젠가는 갚아야할 빚을 냈다.
또 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시민들은 주권자로써 국가가 더 안전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주길 원한다.
정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 모른다. 바로 '증세'다. 국채 발행으로 복지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증세란 말을 싫어한다. 잘못 꺼냈다간 정권 지지율 하락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 국가에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것은 현대 정부의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국가 채무 비율 상승·코로나19 경제 위기·고령화·양극화에 맞닥뜨린 한국이 어떻게 '증세'란 화두를 두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지.
◆유종성 가천대 교수 "기본소득목적세가 가장 간단·명료"
유종성 가천대 리버럴 아츠 칼리지 교수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공정책으로 석사, 불평등과 사회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복지 정책 전문가다. 그의 연구는 주로 불평등, 사회적 자본, 부패 문제에 천착했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실장,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는 최근 여당에서 나오는 증세론이 지지율이 높았던 정권 초기에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복지국가는 높은 조세부담을 필요로 하고 이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필요로 한다. 정권에 대한 신뢰도 저하가 증세 논의를 어렵게 하는 것이 사실이며 현 정권 초기에 복지 확대와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이든 기존 사회보장의 확대이든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는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일시적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대책을 위해서는 몰라도 지속적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
유 교수는 내년 대선을 증세의 타이밍으로 제시했다. 그는 "금년 중 증세 논의가 실제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우리가 선진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매우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대선 시기의 공약 경쟁과 검증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위한 기초를 쌓고, 내년에 들어서는 새 정부가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복지 확대와 증세에 관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여 국민적 토론을 거쳐 정권 초기에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 교슈는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조세와 복지지출을 동시에 늘려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구의 선진복지국가들은 GDP의 45% 내외에 달하는 조세부담율(사회보장기여금 포함)에 GDP의 25% 내지 30%에 달하는 공공사회지출을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조세부담율(사회보장기여금 포함)이 GDP의 25% 수준, 공공사회지출은 GDP의 11%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증세 논의를 하기 위해서 네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첫째, 증세논의는 복지확대와 함께 연계해서 논의해야 한다. 세금을 어떻게 올리고 복지확대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 개인과 가구 차원에서 자신의 더 낼 세금과 더 받게 될 복지혜택(현금과 현물서비스 포함)이 각각 얼마씩인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증세와 복지확대는 저소득층에게는 세금부담 증가보다 복지급여 증가가 더 커서 이익이 되고, 부유층에게는 세금부담 증가가 더 커서 금전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으나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는 것이 사회통합을 이루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하는 길이 되기 때문에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복잡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를 단순화 시키는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조세와 복지제도를 단순하게 설계해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담당 공무원이나 세무사, 사회복지사들에게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렵고 복잡한 제도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다. 조세제도를 한꺼번에 전면적으로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증세를 할 때 신설하는 세목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편증세를 위주로 하되 부자증세를 병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유교수는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빈곤,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돕는 방식으로는 증세도 복지확대도 어렵다. 의심과 낙인이 만연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금내는 1등 시민과 복지급여를 받는 2등시민으로 나누지 말고, 모두가 함께 나눈다는 정신, 즉 저소득층을 포함해 누구나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고 누구나 복지의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기본소득목적세를 예를 들어 보편 증세의 효용을 설명했다.
모든 소득에 대해 10%의 단일세율로 과세하는 기본소득 목적세를 신설해(기존 소득세는 놔두고) 그 세수 전액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금액의 기본소득(또는 근로연령층과 아동 및 노년층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 할 수도 있음)을 지급하는 식으로 단순 명료하게 개혁안을 내놓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손익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인당 평균 소득을 연 3000만원이라고 하면 이 경우 평균소득자는 3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300만원을 기본소득을 받으니 최종소득은 3000만원으로 변함이 없게 된다.
1000만원 소득자는 100만원 세금을 내고 30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받으니 최종소득은 1200만원으로 200만원 이익을 본다.
1억원 소득자는 1000만원 세금을 내고 300만원 기본소득을 받으니 최종소득은 9300만원이 되어 700만원이 줄어든다. 만일 1억원 소득자에게 소득 없는 가구원이 3명 있으면, 가구원 4명이 받는 기본소득이 1200만원이므로 가구소득은 1억 200만원으로 200만원 이익이 된다.
이처럼 단일세율의 비례세로 소득수준에 따라 과세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은 조세-급여 체계 중 가장 단순명료한 방안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소득과 세금에 관한 정보를 넓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증세는 정부와 이웃에 대한 신뢰를 필요로 하는데, 신뢰사회가 이루어지려면 투명한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모든 개인과 기업의 소득을 모두 공개한다. 우리는 공직자부터, 나아가서 김영란법 대상자부터 소득과 재산 및 납세정보를 공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투명하고 부패가 없는 사회, 높은 조세부담율과 높은 수준의 복지를 이루려면 정보공개부터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면 LH 투기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에게 세금과 복지의 맞교환 제대로 설명해야"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재분배 정책 전문가로 지난 박근혜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확대', '재정건전성 확보'를 내걸고 집권했으나 세 목표 중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재정지출 확대 정책의 효과가 작지 않고 복지지출이 적정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므로 과감히 복지지출을 증가시키고, 직접세 강화가 효율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으므로 직접세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탄핵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과거 보수정부보다 재정지출 증가율을 높이고 복지비중을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적극적 증세 없이 재정수입 이내에서 최대한 지출하겠다는 것이어서 대규모의 복지확대를 바라는 진보진영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분간은 직접세 위주로 소득 상위 가계와 법인, 고액자산 보유자에 대한 증세를 추진하고 임대소득과세가 잘 정착되도록 노력하면서 국가채무의 증가도 용인하는 방식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할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과제가 잘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의 복지확대 및 증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현 시점에선 케인즈가 이야기한 대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메우는 식의 일자리도 필요한 시점이라며 확대재정의 중요성을 먼저 언급했다. 정교수는 "추가로 돈을 푸는 것이 효과가 없다? 민간투자를 구축한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야 국가가 추가로 돈을 풀 필요도 없겠지만 위기 시에도 국가의 재정지출 확대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쟁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며 "분업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제에서는 특히 경제위기 시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더 큰 규모로 위기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을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복지확대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당장은 빚을 내서 하면 되겠지만 증세를 통해 더욱 복지 정책을 대규모로 추진할 수 있다. 국가가 기본적인 주거와 생계, 교육, 보육, 의료 노후를 챙겨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증세를 한다면 일정수준 소득 이상자가 해당될 것이고 이들도 기본적인 복지로 돌려받을텐데 국민에게 세금과 복지의 맞교환을 제대로 설명한다면 대다수는 찬성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교수는 "여론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면서 여론을 모으는데 보통 의견을 내는 그룹이 고소득, 고자산가들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분명 혜택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집단이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세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공정한 언론 보도의 중요성도 짚었다.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윤홍식 교수 "선복지 확대, 후증세"
마지막으로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학과장 윤홍식 교수에게 증세의 해답을 물었다. 20세기 초 조선시대부터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국내에 자본주의가 이식된 이후의 재분배·복지정책을 연구한 학자다.
윤홍식 교수는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를 보아도 국민들은 항상 증세에 반대했다며 적절한 타이밍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더 나은 복지국가를 위한다면 기본원칙은 '선복지 확대, 후증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말했다. "증세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국가에 대한 신뢰인데 국가가 걷은 세금이 나를위해 쓰인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 증세란 정말 폭탄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며 "앞서 언급한 선복지 확대,,후증세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위해 국가의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 확인돼야 한다. 이를 통해 신뢰를 쌓으면 그 다음에 증세를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확대를 실현하기 재원 마련 방법으로 4단계를 제시했다.
역대정부에서 이뤄진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감세조치, 역진성이 강한 조세감면제도의 정비를 통해 조세의 공정성과 공평성을 담보하는 것과 함께 재정의 칸막이를 낮추어 걷어 들인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재정개혁을 실행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다.
각종 공적 기금의 강력한 정비 또한 필수다. 국가가 조세를 공정하게 걷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보장이 없다면 국민들은 보편적 증세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세금을 통한 복지확대에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세의 경우 GDP대비 법인세 비중은 현행수준으로 유지하고 대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부담을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임금소득과 비임금소득에 대한 누진적 보편증세를 실현하는 것이다. 신복지체제 구축을 위한 재원은 모든 계층이 부담하지만, 소득이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부담하는 공정한 방식으로 소득세 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세 번째 단계는 OECD 평균의 절반인 기업의 사회보장기여금 분담 수준을 OECD 회원국의 평균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기업의 세부담은 주로 법인세를 중심으로 비교되지만, 사회보장기여금에 대한 한국 기업의 낮은 부담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부가가치세의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단 부가가치세를 증세할 경우에도 음식, 의류 등 생필품 등과 같이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항목에 대한 세율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부가가치세의 증세가 저소득층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까지 내실있게 추진해야 성공적 증세를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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