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는 '이익단체'다. 가입된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이익을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180여개 제약·바이오 기업을 정회원으로 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역시 마찬가지다. 제약바이오협회는 "회원의 복리 증진과 권익옹호를 도모하여 제약바이오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기함으로써 국민 보건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스스로의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협회가 회원사에 "일벌백계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바이넥스가 의약품 주원료 용량과 제조방법을 임의로 변경한 것이 적발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바이넥스가 제조한 32개 품목에 대해 제조 판매 및 회수 조치를 내린 직후 나온 얘기다. 지난 12일 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바이넥스 사건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법 행위라는 점에서 충격을 금치않을 수 없다"며 "협회는 식약처의 추가 조사 등 정부 당국의 조치와는 별개로 빠른 시일내에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 바이넥스에 대한 윤리위원회 회부 등 단호한 일벌백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협회는 이어 지난 18일 긴급 윤리위원회를 가동하고, 바이넥스는 물론, 허가와 다른 의약품을 제조해 적발된 비보존제약의 청문에 나섰다. 위원회는 바이넥스와 비보존제약 대표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제출 자료를 검토한 후, 엄중하게 조치할 방침이다.
협회에 따르면 회원사가 윤리위원회에서 받게 되는 처분은 '구두경고' '서면경고' '자격정지' '제명' 등 총 4단계가 있다. 협회 관계자는 "회원사와 업계 전반의 이미지와 신뢰도를 실추시킬 수 있는 건들에 대해서는 윤리위원회를 열고,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리위원회가 열리는 기준은 명확치 않다. 협회에 따르면 이제까지 윤리위원회가 열린 것은 단 두번뿐이다. 가장 최근 개최된 윤리위원회는 5년 전인 지난 2016년, 파마킹이 리베이트 행위로 검찰 기소되면서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았고, 자진 탈퇴한 사례다. 이에 앞서 2013년에는 반품된 의약품을 재포장해 판매하다 적발된 한국웨일즈제약이 제명된 바 있다. 세포주 성분이 뒤바뀐 사실이 드러나 품목 허가가 취소된 '인보사케이주'나, 대규모 리베이트 수수행위가 적발된 대형 제약사들은 모두 윤리위원회를 피해갔다.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규제 당국이 아닌 협회가 이들을 '본보기'로 삼은 것은 책임 회피, 꼬리 자르기로 보여지는 탓이다. 그 배경에는 원희목 협회장의 정치적인 욕심이 숨겨져 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원 회장은 지난 1월 2번째 연임에 성공했으며 임기는 오는 2023년 끝이 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새누리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내고, 18대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보건의료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책임을 통감하거나 자성을 독려하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지, 회원사에 일벌백계 할 자격은 없다"며 "취임 초기부터 막강한 힘을 가졌던 협회장의 정치적 의도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번 사태의 책임은 바이넥스와 비보존제약에 있다. 이들은 제네릭 난립의 오명을 벗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업계의 노력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규제는 엄연히 보건당국의 몫이다. 협회는 회원사를 벌하는 대신 함께 자정 노력을 했어야 옳다. 지난 2018년 협회 이사장단은 9개월의 공백을 버텨내고 원 회장을 다시 수장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거머쥔 힘은 온전히 회원사를 위해 쓰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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