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가장 힘든 윗사람 스타일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하기만 한 사람'이란 얘기가 있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래도 윗사람이라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욕은 있어 부지런히 '사고'만 치는 스타일이다. 그 수습은 고스란히 아랫사람들 몫이다.
지금 경제계는 지난 1월 26일 공포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국회가 좀 더 신중하게, 현명하게,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만들었어야 할 법안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1년 내내 검찰개혁에만 몰두하다가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 때문에 허점 투성이의 중대재해처벌법을 입법했다. 후폭풍은 고스란히 기업들이 맞게 생겼다.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 얼마나 허점 투성이었으면 경제단체들이 정부라도 시행령 제정 때 좀 더 신중해달라고 요구를 할 정도다. 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가 정부에 제출한 건의서에는 '정부가 내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경영자 책임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부터 근로자 5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부터 시행된다. 현재 정부는 올 상반기 중으로 시행령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은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등 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즉 사장이나 CEO가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잘못하면 건실한 기업인을 범죄자로 내몰게 된다.
특히 건설업종이 가장 걱정이 크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건설공사 현장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군데에서라도 사고가 나면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건설업체 CEO들은 언제 어디에서 사고가 나 교도소에 갈지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당초 이 법안은 위험 사업장에서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채 작업으로 내몰고, 젊은이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추진됐다. '일하면서 죽지 않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절절하기만 하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우리나라는 OCED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본 것 같아 가슴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겠다며 만든 법안은 말 그대로 '과유불급'의 전형이다. 법안이 시행되면 그 이후의 과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대기업들은 인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CEO의 구속을 막기 위한 대책까지 수립했다.
결국,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 작업은 중소기업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인명사고를 예방할 능력과 자금이 부족하다. 당초 목적이었던 인명사고 근절이 왜곡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게 입법취지는 아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14일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는 건설업 사고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으며(51.9%), 소규모 공사현장일수록 사망사고가 높았다. 사업장 규모만 봐도 50인 미만이 전체의 81%인 714명을 차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과연 이런 소규모 사업자들이 그 사이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될지도 의문이다.
한 때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겠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적이 있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유탄'이 중소기업에만 돌아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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