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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책과 함께]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지음/삼인

 

일기를 안 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모든 날의 기록에 코멘트를 달아주었던 좋은 선생님을 만나 열심히 썼던 적도 있지만 강산이 두번도 더 변하고 남았을 적 옛일이 됐다. 버스 정류장에서 외계 생명체를 본(?) 날 감격에 벅차 일기장에 쓴 시를 동생이 가족들 앞에서 신나게 읊어대고 모두가 발을 구르며 폭소한 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 펜대를 꺾었다. 흑역사의 원인이 된 시와도 이별했다.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는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시의 곁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 징검다리에 놓인 디딤돌 같은 책이다.

 

최승자 시인은 '세기말'이란 시에서 "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이제 이 세기말은 내게 무슨 낙인을 찍어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저자는 "돌이켜보면 저 공포와 저 치욕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을 가리는 '이름 붙일 수 있는 불행'이었을 뿐이었다"면서 "유령의 군대와 싸우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 자신이 벌써 유령 아닐까"라고 응답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뿌리 뽑힌 상태에서 시작돼 불안이 수시로 찾아오고 이를 욕망이 가린다. 욕망조차 비어있기 때문에 이를 가리기 위해선 또 다른 욕망이 필요하다. 욕망을 욕망으로 채우는 일이 되풀이되는 세계에서 달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을 때에야 문득 사람들은 뿌리 없이 유령과 싸우고 있는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찍이 시인은 '자본족'에서 "새들도 자본 자본 하며 울 날이 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그날은 재빨리 찾아왔고 다른 세계를 여행하던 최승자는 바로 그런 날들의 한복판에서 우리 앞에 한 번 잠시 나타났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은 시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최승자는 자기 내장을 다 드러내는 사람의 선연한 말을 비수처럼 내던져, 한 번 귀 기울인 사람이라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었다. 자신을 배설물로, 잉여물로 규정하는 그에게는 감출 것이 없었다"고. 그의 시를 안 읽고 배길 수 없다. 시(詩)와 서먹한 이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시와 시인에 관한 이야기 27편을 묶은 시화집. 272쪽. 1만3000원.

 

추신: 외계 생명체의 정체는 비문증으로 인한 헛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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