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비둘기, 개똥에 찰싹 붙어있는 파리, 비온 뒤 아스팔트 도로에 나왔다가 생명을 마감하는 지렁이, 가끔씩 보이는 까치·까마귀·참새 등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자와 내쫓으려 하는 자의 갈등은 여전하다. 거리의 귀염둥이, 거리의 불청객을 넘어서 인간과 길고양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법 밖의 길고양이
길고양이를 비롯한 유기 동물들은 제도에 빗겨나 있다.
동물보호법 제3조는 5개의 항(▲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동물이 고통ㆍ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할 것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을 두고 동물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법 제3조의 전제는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ㆍ관리 또는 보호할 때'로 한정돼 있다. 유기동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인간 품에 있을 때는 법에 보호를 받지만 유기된 후에는 법의 보호를 빗겨간다.
유기 동물 학대에 관한 법령이 개정되어 처벌이 강화됐지만 유기 동물을 관리하고 보호해야 국가나 지자체의 책임은 불명확하다.
동물보호법 제 4조에 따르면 국가는 동물의 적정한 보호ㆍ관리를 위하여 5년마다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된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계획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2020~2024 동물복지종합계획'에 따르면 유기 동물의 포획과 사설관리소 점검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부 차원의 유기동물의 안정적·위생적 생애 관리를 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유기 동물과 관련 ▲신고제 도입으로 사설보호소를 제도권 내에서 관리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시설ㆍ인력 기준 강화로 유기동물 보호 수준 제고 ▲유기ㆍ피학대 동물 구조체계 개선에 집중할 예정이다.
제도권에서 유기동물을 안정적이게 관리하지 못하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농림식품축산부의 입장은 또 달랐다. 농림식품축산부 관계자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을 들어 먼저 길고양이의 정의를 정확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3조 '구조 보호조치 제외 동물'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동물”이란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中性化)하여 포획장소에 방사(放飼)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는 구조 보호 조치에서 제외된다.
즉, 길고양이는 도심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고 번식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관리는 할 수 있어도 적극적으로 구조하거나 보호할 수는 없다는 것.
서울시 아파트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에 제34조에 따르면 입주자 대표회의는 입주자 등의 10분의 1 이상이 연서하여 회의소집을 요구하는 때에 열릴 수 있다.
만약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안이 입주자 대표회의 과반수 반대로 의결되면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보호할 명분은 없어진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입주자 대표회의에 안건을 올릴 수 있지만, 빌라 같은 단독 주택의 경우는 집 주인과 자원봉사자 간의 협의 끝에 길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있다.
◆TNR과 고양이 급식소
유기묘는 계속 거리에 버려지고(2020년 기준 3만 2764마리) 번식력이 뛰어난 고양이의 특성상, 적절한 관리와 통제를 하지 않으면 길고양이의 개체수는 빠르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와 캣맘은 협력해 길고양이 급식소를 세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TNR(중성화 수술)을 통해 개체수의 관리를 꾀하고 있다.
추정치지만 서울시 모니터링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길고양이 수는 2019년 11만 6000마리다. 하지만 불과 8년 전에는 25만 마리였다. 서울시는 15년 20만 마리, 17년 13만 9000마리 등 고양이 개체 수를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
과거 서울시는 2008년 TNR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까지는 시에 고양이가 많아지자 고양이를 다수 살처분 했다.
그 중 종로구가 가장 많이 고양이를 살처분한 구(區)였는데, 2009년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종로구 창신동에서 9년만에 '쥐잡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지상에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많으면 쥐가 지하로 숨어드는데 천적이 사라지니 지상에도 모습을 드러낸 것.
이후 서울시는 길고양이 개체수 관리 방법으로 TNR을 선택한다.
TNR이란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Trap)해 중성화 수술(Neuter)을 한뒤 원래 살던 지역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방법이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게 하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유일한 방법이다.
TNR을 하면 교미음도 사라지고 길고양이가 영역을 구축해 다른 지역에서 다른 길고양이가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통 군집별로 개체수의 70% 정도 중성화 수술을 실시하면 안정적으로 개체수 관리가 된다고 한다.
길고양이를 보다 보면 한쪽 귀의 일부분이 잘려있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데 중성화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라는 표시다.
동물보호단체는 TNR은 길고양이가 수술 회복 후 방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길고양이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활동가는 TNR이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하는 TNR은 어찌 보면 인간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TNR을 정책화하여 시행하는 것은 사람이 겪는 불편을 줄이기 위함이고 제대로 시행할 경우 길고양이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성화는 번식으로 인한 개체 수 증가, 발정기나 영역 다툼으로 인한 소음 발생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길고양이로 인해 사람이 느끼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옥진 원광대 반려동물산업학과 교수는 "TNR은 길고양이로 인한 생활불편 민원해소와 동물보호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인정된 '가장 효과적이고 인도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며 "길고양이와의 행복한 공존을 위한 가장 인도적인 방법인 TNR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는 동물보호 예산을 늘리고 동물보호 단체와 같은 민간차원에서도 TNR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길고양이에게 가장 생존이 어려운 계절이 겨울이라고 한다. 다른 무엇보다 추운 날씨에 물이 얼어서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를 먹기가 힘들다"며 "외국의 사례에서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물이 얼지 않도록 보온이 되는 시설에 사료와 함께 제공하는 길고양이 급식소들을 설치하는 곳들이 많다. 국내에서도 도입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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