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금까지 국회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들 숫자다. 이 숫자는 조만간 32로 늘어날 것 같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변질된 게 사실이다.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 검증을 위한 장치다. 권력에 대한 중요 견제수단이 될 수 있도록 법으로 마련한 제도다.
고위공직 후보자의 학력·경력이나 병역 등에 허위가 없는지 알아내고, 재산신고는 제대로 했는지, 범죄경력은 없는지 등을 심사해 고위공직자로서의 자격을 따지자는 취지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2000년 이후 국회는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문 대통령도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불만을 보였다.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 회견에서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 부분은 젖혀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 주기식 청문회가 됐다"며 "이런 제도로는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도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에서 이 전 총리의 아들 병역문제 등으로 후보자를 압박했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첩인사의 실패'라며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여론재판이 됐다며 제도개선 방안을 여야가 모색해달라고 발언한 바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의 말씀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한 것이니, 상황이 완전히 거꾸로 된 셈이다.
더군다나 지금 세 명의 후보자 가운데 임혜숙·박준영 후보자의 경우는 정의당에서조차 '데스노트'에 올릴 정도로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장관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드는 상황이다. 이런 여론을 무시한 채 임명을 강행할 경우 과거 민주당이 그렇게 욕을 했던 정부와 다를 바가 전혀 없게 된다. 소통과 화합을 중요시하겠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론 불통과 불화만 조장할 뿐이다.
일각에서는 국회에 나흘이라는 시간을 주고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게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과거 추미애·박범계 장관을 임명했을 당시 문 대통령은 국회에 이틀의 기한을 주고 바로 임명을 강행한 바 있다. 하지만 나흘이란 시간을 준 게 진짜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화합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집권 4년차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기를 맞아 집권초기에 결심했던 소통과 화합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시경(時經)의 '탕편(蕩篇)'에는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란 말이 있다. 조선 제9대 왕 성종이 침실에 붙여 놓고 항상 되새겼다는 이 문구는 '시작이 없는 경우는 없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 짓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잘못 하는 자 별로 없지만 끝까지 잘하는 자 또한 적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29나 32나 별반 차이는 없다. 하지만 정권의 마무리만큼은 초심으로 돌아가 좀 더 너그럽고 겸허한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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