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지음/전병근 옮김/김영사
면류를 싫어한다. 누가 사주면 몰라도 내 돈 주곤 안 사 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 칼국수를 먹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큰일 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일행을 구한 뒤 혜화동의 한 칼국수 맛집에 가 국시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이런저런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는 왜 좋아하지도 않는 칼국수를 먹으러 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 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이곳까지 왔는가?"였다. 왜일까. 칼국수를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걸까?
이런 궁금증은 꼭 해결해야 발 뻗고 잘 수 있으므로 지난 일주일을 복기했다. 바로 티브이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서였다. 전주 일요일 KBS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한 가족이 칼국수 맛집에서 한상 푸짐하게 즐기는 걸 본 뒤부터 이 면요리가 먹고 싶어 안달 났던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는 국민신발을 소개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읽고 꽂혀서 산 것이었고, 레고 조립은 어떤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고 재밌어서 따라 하다가 취미 생활이 됐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천상의 신에게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이동한 권위가 조만간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다가오는 기술 혁명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의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라리는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상상한 대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텔레비전도 우리를 감시하고 티브이 알고리즘을 소유한 자는 각 개인의 인성 유형과 감정 유발 버튼을 누르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며 "인간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알고리즘은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주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서 일해야 하는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게 될지도 모른다. 의사결정의 드라마였던 우리네 삶이 사라지고, 인간의 우주적 소명은 모든 걸 포괄하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 속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책은 전망한다. "이미 우리는 그 전모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대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 속의 작은 칩이 돼가고 있다"고 하라리는 이야기한다. 560쪽.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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