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위치한 벨라루스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 체포를 위해 여객기를 강제 착륙 시켜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CNN과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향하던 라이언에어 FR4978편 항공기가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강제 착륙했다. 문제의 여객기에는 벨라루스 반체제 언론인 러만 프라타세비치(26)이 탑승해있었다. 그와 동승했던 여자친구도 함께 체포됐다.
루카셴코 정권은 12개국, 171명의 승객이 탄 이 여객기를 소련제 '미그-29' 전투기까지 출격시켜 자국 땅에 강제로 착륙시켰다. 전투기는 여객기에 폭발물이 설치돼 있어 보안검사가 필요하다면서 비상 착륙을 요구했다.
자유유럽방송에 따르면 여객기 긴급 착륙 후 보안대는 프라타세비치를 한쪽으로 세웠고 옆 승객이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사형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청년인 프라타세비치는 벨라루스 내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는 독립언론 '넥스타(Nexta)를 만든 인물이다. 넥스타 텔레그램 채널은 벨라루스 인구의 12% 해당하는 120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벨라루스 정권은 지난해 8월 대선 이후 전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 넥스타가 주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넥스타는 시위 정보 공유뿐만 아니라 도주 방법, 집합 장소와 복장을 제공해 시위를 조직했다.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독립 언론 사이트 폐쇄·직원 탈세 혐의 기소, 일부 지역 신문 발행 금지, 시위 주요 인물 추적 같은 反민주적 행보를 보였다. 또한 벨라루스 정부는 체포된 프라타세비치의 시위 조직 자백을 인정하는 영상을 송출했다.
벨라루스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데, 지난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26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장기집권을 위해 루카셴코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대통령의 임명권을 대폭 강화했다. 또한 2004년에는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 종신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집권 초기부터 강력한 러시아의 지지자를 자처했으며 1999년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가연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벨라루스 정권의 여객기 강제 착륙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엔, 유럽연합, 나토 등 가리지 않고 벨라루스 정권 비판에 나섰는데, 러시아만 벨라루스 정권을 지지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3일 발생한 벨라루스 여객기 강제 착륙 사건을 규탄하고 조사 개시를 촉구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홈페이지 게재 성명을 통해 "총장은 지난 23일 벨라루스에서 발생한 여객기의 명백한 강제 착륙과 뒤이어 발생한 로만 프라타세비치 구금을 깊이 우려한다"라고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벨라루스에서의 비행편 강제 착륙과 반체제 인사 러만 프라타세비치 구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트위터를 통해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제 항공 수송 규칙을 어긴 어떤 행위라도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대면 회담에서 벨라루스에 대해 EU 27개국 영공 및 공항 사용 금지 제재를 내리는 데 동의했다.
美 백악관도 반발하고 나섰다.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유럽연합(EU) 두 개 국가를 이동 중이던 라이언에어 상업 여객기 강제 회항과 이어진 로만 프라타세비치 체포는 국제 규범을 직접적으로 모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여객기 회항과 프라타세비치 체포를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라며 "이 터무니없는 사건과 뒤이은 프라타세비치가 협박당한 듯한 동영상은 정치적 반대파와 언론의 자유 모두에 대한 부끄러운 공격"이라고 했다.
한편, 국제항공운송협회는 성명을 통해 "벨라루스가 강제로 비행기를 전용한 것은 국제법 규정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국제 조직과 많은 서방 국가의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 반응은 놀랍다"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그들은 로만 프라타세비치 석방을 요구하고 벨라루스를 상대로 엄중한 제재를 제시했다"라며 "그들이 일찍이 다른 국가들이 행한 유사한 사건에는 달리 대응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자 한다"라고 했다.
뒤이은 글에는 미국 정부의 에드워드 스노든 체포 시도가 예시로 언급됐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지난 2013년 미국 측 요청으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가 빈에 강제 착륙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시기로, 볼리비아에선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집권 중이었다. 당시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를 상대로 수색이 이뤄졌으나 실제 스노든은 기내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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