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혼인신고를 하던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사관의 이야기를 접하니 20년전 기자의 부끄러운 군복무가 떠오른다.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기에 대한민국 국군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 모병책자나 언론지상에 알려진 강건한 모습이 장교의 본 모습이라 생각했지만, 야전의 현실은 내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을 내놓기보다, 정해진 틀에 모든 것을 맞춰야 했다. 조직과 상급자의 권위와 체통이 우선시 됐다. 불의를 보더라도 '상관명령'이란 한마디면 정의로 둔갑했다. 장교양성 과정과 병과교육에서 배운 도덕과 전문성은 사라져 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서류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만들라는 강요는 물론이요, 지휘관의 비리행위마저 도우라는 선배들의 무언의 눈빛과 압력은 25살 중위에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이제서야 밝힌다. 난 죄인이다. 반란행위에 가담했다.
지휘관이 요구하는 회식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병들에게 쓰여져야 할 부대운영비를 전횡했다. 이도 모자르자 유기견을 주어다 군대잔반을 먹여 키워서 내다팔아야 했다. 사격장과 훈련교장에 지뢰탐지기를 들고 비철들을 채굴해 고물상에 내다팔기도 했다. 지휘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가의 물건을 절취하거나 훈련병들을 무단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카드빚까지 생겼고, 너무나 힘들었다. 부모님은 다른 집 아들들은 장교생활 하면서 돈을 벌었다는데 너는 무엇을 하기에 빚을 지느냐며 나무랐다. 작전장교와 선배 중대장은 모른척 했다. 25살의 육군 중위는 눈이 오던 날 차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말없이 힘없는 위관장교를 도와주던 부사관들이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나를 살렸고, 지휘관의 부조리를 기무부대(현 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를 하면서 지옥같은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전역을 결심한 나는 군을 밖에서 바꿔보리라는 결심으로 군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됐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군대는 표면적으로는 화려한 변화를 했다. 병의 봉급이 인상되고 피복과 장비가 바뀌었다. 낡은 막사도 새로운 생활관으로 바뀌어 나갔다.
그렇지만, 이것은 외형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 군은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 여긴다.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여성 부사관, 그는 군인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치욕을 당했다. 그가 입은 제복의 명예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가해자와의 합의 종용, 부대의 위신 등이 더 중요했다.
20년 전 나의 상황과 다른 점이라면, 내게는 용기를 내어준 전우가 있었다는 점 뿐이다. 문제의 근본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군부대 급식문제와 불량 보급품의 문제가 제기될 때 군 당국의 조치를 보라. 급작스레 급식예산을 올린다던가 급작스레 식단을 보여주는 말그대로 '썩은 생선에 향료 뿌리기'만 하지 않았나. 불량보급품에 대해서는 '법과 절차의 준수'만을 이야기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적 원인분석보다 보여주기식 참모조직인 'TF'를 설치한다.
이런 군대의 미래는 월등히 우수한 장비를 가지고도 진 중국 국민당군,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군과 미군의 모습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여, 양심적이고 소명의식이 있는 군인들마저 범죄자로 만들 것인가. 전우들이여 이제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하자. 우리는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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