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금융사 영업 현장에선 여전히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펀드나 대출 상품 가입에 앞서 강화된 녹취 의무를 지키기 위해 투자상품 가입이 지체되는 등 마찰음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3월25일부터 시행된 금소법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준수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광고 금지 등 6대 판매규제의 적용범위를 금융상품 전반으로 확대했다. 금융사는 6대 판매원칙을 위반하면 판매액의 최대 5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야한다. 판매한 직원도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또 소비자는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영업 현장서 혼선 여전
"금소법 이후로 규정에 따라서 작성해야 하는 서류뿐 아니라 설명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 잠깐의 시간을 내서 영업점을 내방하는 고객도 상당수인데 길어진 상담 시간 탓에 상담하는 고객도, 대기하는 고객도 불만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3일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 후 지난 두 달간의 상황을 두고 이 같이 전했다.
은행권에서는 금소법 시행으로 관련 규정이 강화된 만큼 위법 소지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상품설명서를 읽어주고, 녹취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펀드 가입 금액과는 별개로 가입 절차에 드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나 영업점을 내방한 고객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법 시행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 오는 9월 24일까지 6개월의 계도기간을 설정했다. 금소법 시행으로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된 규제를 위반해도 제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금소법 규정과 위반에 대한 우려로 펀드 판매 등에서 소극적인 영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섣불리 상품을 추천했다가 부당권유에 해당될 수 있다는 우려뿐 아니라, 가입을 권하더라도 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설명이 필요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업권 내 화두로 떠오른 ESG 트렌드와 역행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사는 투자상품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약관, 계약서, 설명서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결국 종이로 수 십 장에 달하는 서류를 제공하는데, ESG경영 트렌드와는 상반된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에서 종이 사용을 줄이자는 ESG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태블릿PC로 업무를 진행하는 등 '페이퍼리스' 움직임이 확산됐다"며 "하지만 금소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실물 종이로 서류 뭉치를 제공하게 되는데 트렌드와는 상반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민원 증가'·'제도 악용' 후폭풍 우려
금소법으로 현장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민원 건수 증가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꾸준하게 하락해오던 은행권 민원이 금소법이 시행된 올 1분기를 기점으로 소폭 증가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은행권 및 대외기관(금융감독원 등)에 접수된 국내 은행 18곳의 민원건수는 총 582건으로, 572건을 기록한 전분기보다 다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금소법 시행이 3월말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불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 2분기에는 민원이 더 증가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신설한 청약철회권의 악용 의심 사례도 등장했다. 청약철회권은 소비자가 금융상품을 계약한 뒤 일정 기간 내에는 위약금 없이도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악용해 단기간 대출 목적으로 사용한 뒤 대출 철회권을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런데 실제 지난 5월 초에 진행된 SKIET 공모주 청약 환불일에 청약철회권 사례가 평소 10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일각에서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금융당국에서도 이같은 부작용을 막고자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통해 청약철회권에 대한 횟수 제한 등을 추가했다. 또 금융위는 금소법 시행 후 부작용을 줄이려고 애로사항 신속처리 시스템, 금소법 시행 상황반 등을 통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또 이달 중으로 금융당국은 판매사가 제시하는 설명의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핵심설명서 배포를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 초창기부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해 많은 불만을 초래하고 있다"며 "향후 가이드라인 등 보완을 통해 현장의 불편도 해결해, 당초 취지에 맞게 금융소비자 보호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판매 체계도 개선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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