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더 복잡해져서 개발 속도는 느려졌는데, 회사 계획대로 '초격차'는 지켜야하고. 언론에서는 연일 늦어진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책임자는 아마 사표를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된 후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예상했다.
이 부회장이 있을 때는 그래도 해볼만 했단다. 개발이 지연되면 금새 문제 해결 노력으로 이어졌고, 결국 어떻게든 활로가 열렸다는 것. 촌각을 다투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오너 경영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2분기에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 이 부회장 역할론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없어도 삼성전자는 잘 돌아갔다며, 이 부회장을 사면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번 어닝 서프라이즈는 오히려 이 부회장 실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였다. 반도체 침체기에도 슈퍼 사이클을 미리 예상하고 평택 사업장 등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 이익을 대폭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효과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거대한 라인에서 나오는 막대한 생산성을 앞세워 메모리 시장 점유율을 모처럼 반등하는데 성공했고, 일찌감치 도입한 EUV로 최상급 제품들을 찍어내고 있다. 타사 대비 압도적인 수율과 안정적인 성능도 이 부회장 업적 중 하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당장 4세대 10나노(1a) D램 양산에서 미국 마이크론에 뒤쳐졌다. 일단은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고 알려졌지만, SK하이닉스와는 달리 발표도 하지 못한 상태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경쟁 사들보다 앞서있다고는 해도, 여러 위기 속에서도 압도적인 '초격차'를 지켜내던 삼성전자와는 다른 모습이다.
파운드리는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2018년 '반도체 비전 2030'으로 시스템 반도체에 본격 투자를 시작했다가, 업계 1위인 TSMC와 기술 격차를 해소한 직후 수감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추진력을 잃었다.
이후 TSMC는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대만과 미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 막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신공장 증설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 부회장이 경영을 맡았던 때 개발한 기술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가 TSMC를 이길 비장의 무기로 꼽히지만, 이대로 간다면 그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이 형을 마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다. 이제 불과 1년여 남짓. 이 부회장도 어쩌면 속편하게 형을 마치고 떳떳하게 사회로 돌아오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1년 동안 글로벌 산업은 더 빠르게 뛰어갈 것이다. 1년 후 죄값을 모두 치른 수조원대 부자 이 부회장과,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 누가 더 피해자일지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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