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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청와대

靑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한·카자흐 긴밀한 협력 대표적 사례"

청와대는 12일 독립 운동가인 홍범도(사진) 장군 유해가 올해 광복절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대해 "(카자흐스탄과 한국) 양 정상 간 쌓아온 신뢰와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사진 출처=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청와대는 12일 독립 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유해가 올해 광복절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대해 "(카자흐스탄과 한국) 양 정상 간 쌓아온 신뢰와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당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이에 호응해 성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가운데 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현지에 안장돼 있던 계봉우, 황운정 지사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사례에 대해 언급하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양국 국민에게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특별한 역사적 유대와 80여 년을 이어온 양국 우정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독립군을 편성하고 지휘해 봉오동 전투에 이어 청산리 대첩까지 승리로 이끈 한국 독립사에 있어 영웅적인 인물로 꼽힌다.

 

청산리 대첩 이후 홍범도 장군은 연해주에 거주한 1937년 당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 수장인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이어 이듬해인 1938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정착한 후 1943년 세상을 떠났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지난해 3·1절에 결정된 이후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을 기해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일정은 연기됐고, 이번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 계기에 성사됐다.

 

청와대는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대해 "위대한 독립군 대장으로 일본 정규군과 최초의 승리인 봉오동 전투와 최고의 승리인 청산리 대첩을 지휘해 대한민국 독립에 이바지한 홍범도 장군이 1921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만큼 이번 유해 봉환 의미는 더욱 크다"고 전했다.

 

이어 "(당초) 지난해 3·1절을 기해 같은 해 6월 7일인 봉오동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 (유해 봉환을) 맞추려 했는데, 거의 1년 정도 늦어졌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이고, 10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신다고 보면 이 또한 의미가 있다"고 부연해 설명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민족정기 선양, 국민 애국심 고취, 고려인의 민족 정체성 함양,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우호 증진' 등에 기여한 공적을 새롭게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도 받는다.

 

한편 청와대는 유해 봉환 이후 카자흐스탄에 남아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 역시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협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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