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청미래
동년배들과 다르게 패키지여행을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이드 뒤만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 돼서 편하다.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요, 중간에 간식까지 챙겨주고 꼭 들러야 할 관광지도 빼먹지 않고 전부 찍고 가준다. 안전한데다가 싸기까지 하다. 단체 관광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곤 일행 중 몇 명이 약속 시간을 어겨서 다음 행선지로 늦게 출발하는 것 정도다. 같이 여행간 사람들은 다들 어찌나 개성 넘치고 재밌는 캐릭터인지 투어 한 번만 갔다오면 재밌는 일화가 한보따리씩 쌓인다.
약 3년 전 캄보디아 여행을 떠났을 때다. 패키지투어에서 빠지면 섭섭한 보석 가게를 가던 길이었다. 부산에서 온 아저씨 한 분이 "이전에 패키지여행을 가서 아내에게 주려고 루비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 세트를 하나 산 적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보석 감정을 해보니 모두 가짜였다"며 "그때 여행사랑 싸우고 환불처리 하느라 맘고생을 심하게 해서 보석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말을 했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싸해졌고 이날 보석 상점에서 물건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다음해 필자는 7박 9일 일정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훑는 패키지여행을 갔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9시까지 숨돌릴 틈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누군가 "중학교 극기훈련 온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어울렸다. 아무튼, 이 여행 무리에 또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긍정왕'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어디에서 무슨 음식이 나오든 두 그릇은 기본으로 뚝딱 해치우며 "다 맛있지 않아요?"라는 말을 했고, 여행 후기에서 돈 아깝다는 평이 주를 이뤘던 옵션도 전부 추가해 뭘 보든 간에 "정말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양가죽 쇼핑센터에서는 '저런 옷을 누가 사'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가죽 재킷을 사 입기도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농담으로 "여행사에서 나온 거 아니냐"고 놀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로 해당 여행사에서 심어 놓은 직원이었다. 현장에서 고객들의 솔직한 후기를 듣는다나 뭐라나. 이쯤 되면 "천태만상 인간세상 사는 법도 가지가지"라는 노랫말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알랭드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렸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 '우리는 왜, 어떻게 여행을 떠나는가'라고 묻는다면 "인간세상의 천태만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당탕탕 소란스럽게 간다"고 답하겠다. 328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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