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지음/어크로스
지난 23일 억대 연봉을 벌게 해준다는 제목에 혹해 책을 사려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갔다. '바로구매' 버튼을 누르려던 중 정가보다 44% 싼 '최상' 상태의 중고책을 발견했다.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판매자가 내놓은 약 170권의 중고책들을 훑어봤다.
움베르트 에코의 팬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책이 많았다. '기호와 현대 예술'에서부터 시작해 '중세의 미와 예술',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 '무엇을 믿을 것인가', '움베르트 에코의 문학 강의'까지 품절 및 절판된 책을 전부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는 더는 나오고 있지 않는 책임에도 가격이 무려 2000원으로 저렴했다.
눈이 뒤집혀 이책 저책 담다 보니 총 결제 예상 금액이 원래 사려던 책 가격의 약 4.5배인 7만1500원이 됐다. '그래, 많이 샀으니 그럴 수 있어.'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해당 판매자가 무조건 유료 배송이라는 조건을 걸어 둬 배송비가 3000원이 더 든단다. 짜증이 확 나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움베르트 에코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을까 말까',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사야 하나 절판된 도서를 먼저 집어가야 하나' 등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쓴 한 시간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으로 구매자의 선택지가 수백, 수천배로 늘어나면서 쇼핑은 고역이 됐다. 옛날엔 물건을 사는 행위가 마냥 즐거웠던 것만 같은데 이제는 '쇼핑'이라는 두 글자만 떠올려도 머리가 지끈지끈 두통이 인다. 뇌과학자인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그의 저서 '열두 발자국'에서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의미 있는 정보가 뭔지 몰라 오히려 의사결정이 어려워졌다"며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현상을 설명한다. 많은 선택지가 되레 만족스러운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컬럼비아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서 시간마다 진열을 바꿔가며 한 번은 6종류의 잼을, 다음에는 24종류의 잼을 판매했는데 구매율은 전자가 10배 더 높았다고 한다. 저자는 "선택지가 많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커지기 때문에 구매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며 "처음에는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할 때마다 좋은 감정이 커지지만 물건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쁜 감정이 커져 어느 숫자를 넘어가면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끼며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범위는 6~10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라고 한다. 현재 가게를 운영 중인 주인장 중 매장에 제품이 많은데도 손님들이 사가지 않아 고민이라면 물건의 가짓수를 줄여봄이 어떠실는지. 400쪽.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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