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의 숙원과제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도입된다. 원리금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에 추가하기로 여야가 극적인 합의를 이루면서다. 쥐꼬리라는 오명이 붙는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과 투자자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타겟데이트펀드(TDF·Target Date Fund)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6월 개최된 법안소위에서 통과가 불발된 지 5개월 만이다. 환노위 전체 회의, 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제도 시행이 가능하다.
◆'원리금보장상품' 포함된 반쪽짜리 법안?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투자성향에 맞춰 사전에 지정한 방법에 따라 퇴직연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국내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DB형은 회사가 운용 지시를 내리고, DC형은 근로자가 운용 지시를 내리는데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금 수령액이 달라진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TDF를 비롯한 혼합형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부동산인프라펀드, 원리금보장상품 등 정부가 정한 디폴트옵션 관련 상품 중 한가지 이상을 사전에 선택하게 된다. 가입자의 운용 지시 없이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 방법으로 투자 상품을 자동으로 선정해 운용한다.
금투업계의 숙원과제로 꼽혔던 디폴트옵션은 원리금보장상품 편입 여부를 놓고 증권업계와 은행·보험업계간의 의견차가 컸다. 이에 따라 김병욱·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적배당형만 포함된 개정안을,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원리금보장형이 포함된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제도 도입이 더 시급하다며 금융투자업계가 한발 물러섰다.
특히 지난 6월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제도의 빠른 도입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수익률 제고라는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리금보장상품도 포함한 법안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회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된 디폴트옵션은 반쪽짜리 제도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원리금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에 편입했다. 그 결과 디폴트옵션 도입에도 원리금보장상품에 투자금이 쏠렸다. 게다가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퇴직연금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2014년 5.4%에서 2019년 -1.9%를 기록해 대표적인 제도 도입 실패 사례로 꼽힌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제도 도입이 우선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며 "다만,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돼 반쪽짜리 제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노후 소득이 걸린 문제인 만큼 일단 법안을 통과시킨 뒤 개정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DF 순자산 10조 돌파…"자산운용사 환영"
디폴트옵션의 도입으로 투자자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TDF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운용업계도 디폴트옵션의 도입에 앞서 독자 운용을 선포하는 등 TDF 상품 선점에 나섰다. 실제로 TDF는 퇴직연금 내 비중이 점점 증가하며 현재 순자산 규모가 10조원을 넘긴 상태다.
TDF는 투자자가 정한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운용사가 자산 비중을 조정해 알아서 투자하는 상품을 말한다. 증시 대비 낮은 변동성을 보여줘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내는 연금상품으로 적합하다.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변동성을 낮게 관리하는 구조로 설계돼 미국, 호주, 영국 등 연금 선진국에서는 대표적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채택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국내 TDF 시장의 설정액은 7조6344억원, 순자산 규모는 10조3047억원으로 집계됐다. 각각 올 초와 비교했을 때 6조원, 3조원씩 자금이 유입됐다.
현재 TDF 시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44%의 점유율을 보이며 선점하고 있다. 이어 삼성자산운용이 23%, 한국투자신탁운용과 KB자산운용 10%로 3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신한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등 후발주자도 매서운 추격에 나섰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이날 열린 자산운용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해 "디폴트옵션은 결국 DC형에 있어서 자산운용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며 "현재 입법과 관련해서는 자산운용사들이 자산운용과 관련해 탄력적인 운용을 할 수 있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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