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턴 패디먼 지음/이종인 옮김/연암서가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고전만 읽는다'는 나름의 독서 철칙을 지닌 소설 속 등장인물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짧아 수백, 수천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양서라고 검증한 책만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의 심정이 백번 이해되는 이유는 필자도 가끔 출판사에서 맛깔나게 쓴 책 소개 글에 홀랑 넘어가 허섭한 신간을 완독할 때가 있어서다. "나무야 미안해"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종이 뭉텅이들을 읽다 보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나 넷플릭스 드라마는 2배속으로 보거나 재미없으면 도중에 시청을 중단하면 그만인데 책은 앞부분을 읽은 게 아깝기도 하고 어쩌면 뒤에는 괜찮은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손을 놓기가 어렵다. 이러한 연유로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인류 지식의 정수가 담긴 고전을 추천한다.
'평생독서계획'은 사람들의 두뇌 깊숙한 곳에 코일처럼 감겨 있던 생각의 태(胎)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위대한 작가들의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아이디어의 산파 역할을 하는 책을 통해 우리가 오랜 인류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해 이 세상에 오게 됐는지 알게 되고, 삶을 지탱하는 사상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고매한 사상과 이야기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 것 또한 고전의 묘미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컨대 '길가메시 서사시'를 탐독한 독자라면 이 책이 히브리 성경(구약성경)의 모태가 됐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세련되고 잘생긴 길가메시와 털 많고 야생인 엔키두는 야곱과 에사오를 연상시키고, 하늘의 황소가 일으킨 파괴 행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황야에서 방황하면서 황금 송아지를 주조한 행위와 비슷하다고 책은 짚는다.
뿐만인가. 플라톤이 '국가'에서 다룬 보수적인 이상 국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을 탄생시켰고, 백성들은 사악한 군주에게 반항할 권리가 있다는 맹자의 사상은 제수이트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돼 훗날 미국 독립 혁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저자는 "지난 수천년 동안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며 "상상력을 밑천으로 삼는 위대한 예술가는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현대인처럼 보인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512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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