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교육청이 지난 27일 서구 학생교육문화회관 내 김용근 선생 흉상·표정두 열사 추모비 주변 환경 정화사업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장휘국 교육감을 비롯해 표정두 열사의 모친 고복단 여사, 김용근 선생·표정두 열사 기념사업회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다.
28일 시교육청에 따르면 본 사업은 특별교육재정수요경비 1,300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학생교육문화회관 주관으로 시공했다. 시교육청은 민족과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바친 두 의인을 기리고 공로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안내판, 화강암 둘렛돌, 백조약돌 포장, 미관 식물 식재 등을 시공하고 전체적인 환경 정비를 통해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산뜻한 역사교육 장소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용근 선생(1917~1985)은 강진 태생으로, 1937년 영광 야월교회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6개월 형, 1941년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배일사상을 전파하다 2년 형을 받았다. 해방 후 전주고·광주고·광주제일고·전남고 역사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역사의식을 고취했다. 1975년 5월 유신 반대 선동 혐의로 교단을 떠난 뒤, 고향에서 농촌계몽에 투신하던 중, 1980년 5·18 관련 제자들을 숨겨주다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고 2017년에는 제자들이 추모흉상을 세웠다.
표정두 열사(1963~1987)은 신안 태생으로 광주대동고 재학 중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 1983년 호남대 무역학과에 진학 후, 1986년 무렵 노동운동에 투신해 무등교회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1987년 3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분신한 뒤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 라고 외치며 미국대사관 앞으로 달려가다 쓰러져, 이틀 뒤인 3월 8일 운명했다. 2001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2021년에는 민주주의 발전 유공자 국민훈장이 추서됐다. 1991년 호남대 교정에 추모비가 처음 세웠으며 2019년 빗돌을 현 위치로 옮겼다.
장휘국 교육감은 기념사에서 "김용근 선생·표정두 열사는 얼마든지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민족과 나라를 위한 가시밭길을 걸은 스승이고 선각자"라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분들의 삶을 기억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삶을 다짐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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