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M. 버크먼 지음/신동숙 옮김/윌북
최근 넷플릭스에서 '애나 만들기'라는 9부작 웹드라마를 시청했다. 독일 출신 상속녀로 신분을 속여 뉴욕 사교계를 뒤흔들던 애나 소로킨의 몰락 과정을 다룬 시리즈다. 보면서 든 생각은 '야, 나도 이런 재밌는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였다. 사실 수년 전부터 이 얘기를 입버릇처럼 떠들어왔지만, 엄두가 안 나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위대한 예술 작품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미국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의 총장이자 예술 교육의 비전을 제시해온 저자는 세기를 빛낸 창작자들을 연구하며 작품이 탄생하는 단 하나의 비밀을 밝혀낸다. 바로 "만들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예술가가 갖춰야 할 미덕으로 꼽히는 ▲천재성 ▲광기 ▲영감이라는 세 요소가 우리가 창조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만들면서 알게 된다'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창조성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이런 전통적인 견해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학자인 마저리 가버는 "천재가 나타나서 기술적, 철학적, 영적, 미적 난국에서 우리를 구해줄 거라는 희망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역사학자 대린 맥마흔은 '천재성에 대한 집착'을 '종교'에 빗대 표현하고, 가버는 이를 '중독'으로 규정한다. 천재성에 매혹되기보다 창작 과정에서 발현되는 놀라운 가능성에 관심을 돌린다면, 인간의 성취와 발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은 특출난 예술가의 일화에는 비범한 천재성과 더불어 광기나 음울한 기벽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고 짚는다.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이야기에 매혹되고,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이야기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정신 질환을 앓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에게 총을 겨눠 목숨을 끊고, 버지니아 울프 역시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대중문화는 예술가의 일탈적 행동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니 우리가 왜 광기를 창조적인 사람들의 주요 특성으로 생각하게 됐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개념은 여태껏 창조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켜왔다"고 꼬집는다.
천재성과 함께 예술가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신비로운 영감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사(Mousa·뮤즈)는 음악, 시, 미술 등을 관장하는 아홉 신이다. 나중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저자는 "'뮤즈'라는 용어가 함축하는 바는 명확하다. 창조성은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게 아닌 선택받은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힘이라는 것이다"고 지적한다.
책은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이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했는지 알려준다. 320쪽. 1만6800원.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