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서가면 우리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화성에서 거주하는 것 보다 우리가 먼저 살아가야 할 가상융합 세상에서 롯데 메타버스가 기준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지난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주요 계열사 대표 등 경영진이 참석한 주간회의를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에서 열었다. 메타버스는 최근 모든 업계가 주목하는 기술이지만 당장 기업의 자산총액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전 계열사의 총력전을 독려한 데에는 롯데그룹이 공격적으로 신사업과 시장을 발굴해 미래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롯데그룹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가장 혹독하게 치렀다. 동시에 올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하고 진행 중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롯데그룹 시가총액은 지난 1월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말과 대비해 8% 증가했다. 그러나 삼성, 현대차그룹, SK, LG 4대 그룹이 최소 35%, 최대 85%까지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5월 현재 시가총액 30위권 내에 롯데그룹 계열사는 단 한 곳도 없고 50위까지 범위를 넓혀야 롯데케미칼만이 34위를 차지 중이다. 이대로라면 재계 10위 밖으로도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 호텔 등 유통산업 중심으로 꾸려진다. 전통적으로 '유통 황제'로 손꼽혔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롯데가 쌓아온 유통산업의 노하우는 속수무책이었다. 롯데쇼핑이 처참하게 실패한 e커머스사업과 그동안 롯데쇼핑을 떠받친 거대한 오프라인 유통채널도 큰 짐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다른 유통 대기업들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e커머스에 이어온 투자와 기술 확보를 통해 도리어 큰 성장을 이뤘다. 경쟁사들은 2010년대 후반 유통사업 불황이 가시화되면서 대응책에 나섰지만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또 다른 주력사업인 롯데케미칼도 2011년 이후 10년간 연간매출액 15조원 전후로 정체 중이다. LG화학이 신성장 동력 발굴에 성공하면서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훌쩍 뛴 것과 대비된다.
◆어디에나 '롯데'가 있던 '유통 제왕'에서 위기설까지 우여곡절
2000년대를 롯데그룹은 전방위로 활동을 뻗친 '웅비기(雄飛基)'로 설명한다.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그룹을 자산규모 7위(공기업 제외시 5위)의 상호출자 채무보증제한기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국내 법인 기준 60개 계열사에 총자산 67.3조원(2009년말 공정자산 기준)을 보유했다. 2000년대 롯데그룹은 소매유통업(38%), 석유화학(22%), 식품(11%) 부문을 주력사업으로 했다(2009년말 공정위 발표 기준).
소매유통업과 식품사업 등 내수산업 위주로 이루어진 롯데그룹은 2000년대 경쟁사들과 달리 무리한 해외사업을 지양하고 그룹역량을 국내 주력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다. 해당 시기 설립한 계열사와 인수 기업을 보면 2000년도에는 ▲롯데닷컴 ▲롯데브랑제리 ▲롯데슈퍼 등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우리홈쇼핑, 2009년에는 두산주류비지를 인수했다.
이러한 전략은 롯데가 명실상부 '유통황제'로 자리하는 데 이바지했다. 국내사업과 소비자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한편 기존 사업기반을 공고히 하는 배경이 됐다. 식품, 레저관광 산업과 연관성이 높은 소매유통업에서 압도적으로 선도적인 시장지위를 확보하면서 사업간 시너지를 내며 급성장하기도 했다.
2010년대는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했다. 한국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지만 순식간에 부진의 늪에 빠져들었고 대표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심지어 수장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중 법정 구속 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2010년대 초기 롯데그룹은 사업 다각화와 주요 사업부문의 상위 시장지위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지주 주식회사 설립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 단순화작업을 하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기에는 유통가의 황제로 군림하면서 일부 사업의 부진에도 시장에 선도적인 지위를 확보한 사업부문들로 부진을 빠르게 회복하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 석유화학경기 저하와 내수 부진에 따른 석유화학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2015년 순이익이 4조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바로 다음해 경기민감도가 높은 석유화학부문 매출이 개선되면서 2017년 6조원을 훌쩍 넘는 EBITDA를 창출했다.
그러나 2015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경영권 분쟁에 따른 이미지 추락도 있었지만 여기서 롯데의 국적 논란이 불거지며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이 공고히 박히는 계기가 됐다. 1월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이 그룹 내 모든 보직에서 해임당하면서 갈등이 노출됐고, 9월 국정감사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출석하는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신 회장은 추가적인 경영권 분쟁이 없을 예정이라고 밝히고 일본 기업 논란에 관해 "한국 상법에 따라 세금도 내고 있고 근무하는 사람도 한국인들인만큼 롯데는 대한민국 기업"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2010년대는 후반부터 대기업 경기를 주도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수소차, 바이오 산업 등의 부재와 동시에 온라인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부진이 시작됐다.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 한한령으로 이어진 중국진출 실패와 '일본기업' 이미지에서 오는 제품 불매 운동 등이 핵심 산업인 유통 산업의 부진을 촉진했는데 온라인화에도 실패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국정농단 사태 때는 신 회장이 법정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을 호텔롯데의 상장과 면세점 면허 재취득이라는 부정한 청탁을 목적으로 한 뇌물로 판단하고 신 회장에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했다. 2심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으며 풀려났지만 롯데그룹으로서는 최악의 사건을 겪은 셈이다.
◆"아직은 기회 있다"…신사업 발굴하고 '보수' 조직문화 개선
다행히 여러 전문가 그룹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변한다면 역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롯데그룹은 공격적인 투자와 기업 문화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롯데그룹 인수 및 지분투자 현황은 12건에 투자금만 총 1조원에 달한다. 대상 업종은 대부분 온라인 플랫폼, 콘텐츠 제작, 배터리, 미래 식량 등 미래 신사업을 위한 것들이다.
그룹 체질 개선을 위한 체계 변화는 물론, 인력 구조조정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롯데는 2017년부터 유지한 BU(비즈니스 유닛) 체제를 폐지하고 HQ(헤드쿼터) 체제를 새로 도입했다. 롯데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비(非) 롯데맨이 대표단에 등장했다.
가장 큰 변화로 지목되는 HQ체제 전환은 롯데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단행됐다. BU체제에서는 계열사가 인사·재무·기획·전략 등 경영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HQ체제로 전환하면서 의사결정권은 각 사업군의 총괄대표로 넘어갔다. 제도 재설계를 통해 의사결정 단계가 축소됐고, 권한이 대폭 커지며 중장기 전략 마련에 유리해졌다.
임원 인사도 대폭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8월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물러난 후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을 선임했다. 여기에 더해 2020년부터 전체 600명의 20%에 달하는 100여 명에 달하는 임원을 감축하고 인사체계를 혁신했다.
특히 롯데쇼핑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유통사업 HQ장에 비(非)롯데맨 인사인 김상현 부회장(전 DFI리테일그룹 대표이사), CMO에 이우경 부사장(LG생활건강 출신) 등을 배치했다. 김상현 부회장은 조직문화에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 새로운 분위기로 재무장한 롯데그룹이 새로운 도약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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