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결(5월 26일)이 나오면서 이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올해 기업들의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노사간 신경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올해 임단협을 둘러싼 투쟁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반면 사측은 노조와의 대화에 성실히 임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대법원의 판례를 면밀히 분석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9일 경영계는 임금피크제 대응 방안과 정책적 개선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를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이날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법무법인 세종과 함께 '임금피크제 판결 동향 및 기업 대응 방안 온라인 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설명회는 대법원 임금피크제 판결의 의미와 법률적 쟁점을 살펴보고 기업의 대응 방안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설명회에서 김동욱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임금피크제 자체의 효력을 부정한 것이 아닌 만큼 과도한 불안과 공포는 금물"이라며 "기업에서는 대법원의 취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현재 운영하는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개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임금피크제 소송 사태가 벌어질 경우 승패와 상관없이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워 고용 확대나 향후 고용연장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김종수 변호사는 "기업들이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른 정년연장 대응조치로 일반적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작다"면서도 "정년연장을 위해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경우라도 도입 목적의 타당성, 근로자 불이익 정도 등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효성의 판단 기준에 맞지 않다면 무효화될 우려가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세리 변호사는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사항으로 현행 임금피크제 점검·개선, 소송 발생 때 대응 방안, 노조와의 단체교섭 전략 등을 꼽았다. 이 변호사는 "인사담당자들은 정년제 형태, 임금피크제 목적, 대상 근로자 조치 여부 등의 각 사항을 개별적으로 점검해 현재 운영 중인 임금피크제를 정비해야 한다"며 임금피크제 유효성 점검을 위한 체크리스트도 제시했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8일 이번 판결과 관련해 기업의 향후 대응 방안과 정책적 개선 과제를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대법원이 연령을 기준으로 한 임금피크제를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제시한 기준은 도입 목적의 정당성,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업무량 조정 등의 대상 조치 여부 등에서 노사 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이미 노사 간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운용 중인 산업현장에 노사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폐지와 관련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노총의 임금피크제 대응 방침이 나오면서 무효 투쟁이나 소송에 시동을 걸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를 임단협 협상 카드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향후 노사 갈등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법원이 지적한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이지만 노조에서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도 무효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 내 4개 노조가 모인 공동교섭단은 최근 삼성전자에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노조 측은 "근무 형태와 업무의 변경 없이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운영하는 현행 임금피크제도는 명백한 차별이므로 폐지를 요구한다"며 "불합리한 임금피크제 운영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에 대해서도 회사의 보상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4년에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만 55세를 기준으로 전년 임금 대비 10%씩 줄여나가는 방식이었다. 이후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를 만 57세로 연장하면서 임금 감소율도 5%로 낮췄다. 삼성전자 측은 곧 회사의 입장을 정리해 노조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SK하이닉스와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산하 노조들이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의 5대 핵심 요구안 가운데 하나인 정년 연장과 연계해 임금피크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르노코리아 노조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포함시키는 등 최근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은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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