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지음/라티오
'학생이라는 죄로 /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 공부란 벌을 받고 /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한때 '중2병 걸린 학생이 쓴 손발 오그라드는 시'로 화제가 됐던 글이다. 처음 접했을 땐 그저 유머러스한 풍자 시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공포스러운 다잉 메시지(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긴 단서) 같다. 요 며칠 고전에서 길어 오른 인류 지식의 정수를 다룬 책 '인문 고전 강의' 중 파놉티콘 관련 부분을 읽다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프랑스 의회에 감옥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원통 중앙에 감시탑을 세우고 벽에 감방을 둥글게 배치한 형태의 원형 감옥 '파놉티콘'이 바로 그것. 벤담은 파놉티콘이야 말로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 있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감시자는 어떤 '도구'를 사용해 사람들을 '감시'한다. 그리고 '감시'를 사람들의 내면에 심어 놓는다. 감시자의 의도, 즉 질서와 규율을 피감시자의 내면에 집어넣으면 감시자의 입맛에 맞게 피감시자의 행동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벤담은 파놉티콘 프로젝트 제안서에서 교육을 그 예로 든다. 그는 "교육은 학생을 둘러싼 전체 환경의 결과물이다. 한 인간의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바로 그의 행동 전부를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사물에 둘러싸이게 하는가, 어떤 생각을 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놓는 것이 교육이다"고 말한다. 섬뜩하기 그지없다.
저자 강유원은 "유용하고 효력 있는 도구를 사용해 감시하고 그것을 내면화시키는 것이 교육"이라고 설명하며 "죄수들의 몸에 감시를 집어넣어 감시자의 질서를 체화시키는 것이 벤담의 의도"라고 이야기한다. 고전을 통해 현상의 본질을 꿰뚫게 해주는 책. 576쪽.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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