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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제약/의료/건강

[다시만난 巨人] '생명을 살리는 약이 진짜 약이다" 성천 이기석 선생

JW중외제약은 지난 70년 '수액제'라는 고된 길을 꿋꿋이 걸어온 기업이다. 수액은 입원 환자에겐 '생명수'이지만 기업에는 '돈이 안되는 약'이다. 기초수액제의 가격은 1000원대로,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 가격보다 싸다. 이윤은 일반 드링크제보다도 터무니없이 낮다. 이 때문에 기초수액제는 필수 치료제지만 제약사가 기피하는 '퇴장방지의약품'의 대표 품목이 됐다.

 

하지만 JW중외제약은 남들이 기피하는 길을 70년째 묵묵히 걸어왔다. 수액제 국산화를 처음 이뤄냈고, 충청남도 당진에 세계 최대 수액 공장을 세우며 아직까지도 국내 입원 환자들을 위한 생명수 개발에 힘쓴다.

 

이는 "시장성이 없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진짜 약이다"라는 창업주 성천 이기석 선생(사진)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온 결과다. 성천은 한국전쟁 직후 JW중외제약의 전신을 세우고, 고통받는 생명을 위해 평생을 바친 기업인이다. 불모지에 그가 심은 '생명존중'의 씨앗은 이제 난치질환 환자를 위한 혁신 신약으로 피어나고 있다. 자료와 문헌들을 통해 성천 이기석 선생을 다시 만났다.

 

성천의 첫 직장은 '김포금융조합'이었다. 금융사 근무를 계기로 협화약품양행 경리책임자로 일하며 제약 산업에 첫 발을 들였고, 해방 후 회사의 경영을 맡으며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뜻 밖의 기회가 찾아온 건 1953년 여름이었다. 동향 친구가 찾아와 도산 위기의 '조선중외제약소'를 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의 나이 마흔을 막 넘겼을 무렵이었다.

 

- 당시 기업은 어떤 상태였나.

 

"조선중외제약소는 출범 당시부터 주사제만 전문으로 생산해 온 기업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본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도산위기를 겪고 있었다. 주력 제품인 수액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고, 다른 제품들에 비해 이윤 폭이 너무 작아 정상적 경영이 어려웠다. 수요가 약국이 아닌 병원과 의원에 국한돼 고객을 확장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 돈 안되는 것을 알고도 인수를 결정했나.

 

"환자들의 고통이 너무 컸다. 휴전 이후 미국이 철수하고 나니 수액을 거의 구할 수가 없었다. 수술 후 물을 마시지 못하는 환자들은 물론, 이질, 장티푸스, 콜레라 환자들도 탈수증으로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어차피 누구든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모두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누가 살려내나.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성천이 합성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그렇게 '대한중외제약'을 세운 성천은 국민을 살리기 위한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6년 후인 1959년, 국내 처음으로 5% 포도당 수액을 선보이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수액제의 국산화 시대를 연다.

 

이후 1964년 '하트만' '엘알긴 주사제', 국내 최초 항생제 '겐타마이신' 등을 개발했다. 1969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합성 항생제 '리지노마이신'을 개발에 성공했다. 세계 두번째 쾌거였다.

 

- 국내 최초 신장 이식 수술의 역사도 썼다.

 

"1969년 한 재미교포가 미국에서는 신장을 기부 받을 수 없어 한국에 들어왔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신장이식 수술이었는데, 신장은 있어도 수술 중 신장에 차는 물을 빼내기 위한 투석액 '인페리놀'이 없었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임원 회의를 소집해 공장 내에서 다른 약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오로지 투석액 개발에만 전념할 것을 지시했다. 몇 차례 실패 끝에 신장이식수술에 필요한 5리터짜리 15병의 투석액을 만들어냈고, 이 투석액으로 카톨릭 중앙병원이 국내 첫 인공신장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연구기금 지원도 없었고, 생산라인 중단 손실도 있었지만 환자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린 결과였다."

 

JW중외제약이 60년대 개발한 '고양이표 후라킬' 역시 성천의 생명존중 철학을 알려주는 일화로 유명하다. 성천은 사람에 독성이 미치지 않는 쥐약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스스로 생산을 중단하고 당시 보사부에 허가취소를 자진 신청했다.

 

- 쥐약은 왜 개발했나.

 

"60년대는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했던 시대였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개나 고양이가 먹고 죽으면 그걸 사람이 끓여먹다 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2차 독성을 제거한 쥐약을 개발해 '고양이표 후라킬'이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기 시작했다. 후라킬은 발매하자마자 히트 상품이 되어 당시 어려웠던 회사 재정에 크게 기여했다."

 

- 그런 후라킬 생산을 자진 중단한 이유는.

 

"쥐도 생명이다. 약을 만드는 것은 결국 죽는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일인데 우리는 생명을 죽이는 독을 만들고 있지 않나. 약다운 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구하는 회사로 사명을 정했는데, 재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사명과 어긋나는 일에 직원들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수액제에 대한 성천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70년대, 대한중외제약 수액을 맞은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 경영에서 물러나있던 60대 성천은 망설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들 앞에서 직접 수액을 맞겠다고 팔을 걷었다.

 

- 생명을 걸고 나선 일이었는데.

 

"철두철미하게 생산한 우리 수액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다. 결국 사망 사고는 수액이 아니라 주사기 세트 세균 오염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후 영업사원들도 회사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부작용이 나면 자신이 직접 수액을 맞았고 이는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모두가 우리 수액의 안전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야유회에서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성천의 모습.

성천은 생명 존중 만큼이나 직원 존중에도 힘썼던 리더였다. 직원들과 만나는 매 순간 '중외가족'과 '직장낙원'이라는 경영철학을 공유했고, 실제로 기업을 신나게 일하는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JW중외제약은 1967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사내급식 제도를 공식 도입했다.

 

-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한 제도였다.

 

"당시 수액 한 병 값이 180원이었다. 그런데 수액을 담는 90원, 100원하던 호리병이 점심시간 후 2~3시에 많이 깨진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인을 분석하던 중 병을 나르는 생산부 직원들이 점심을 거르고 일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직원들을 굶겨가며 일을 하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태극당의 곰보빵을 사와서 공급했고, 곰보빵이 국수로, 70년대에는 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나서 병이 깨지는 문제도 근원적으로 해결하게 됐다."

 

1972년 3월 세종호텔 해금강홀에서 개최된 아루사루민 학술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는 성천.

성천은 1975년 타계했지만 그의 정신은 3대를 거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성천의 아들인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과 손자 이경하 JW그룹 회장은 성천이 경영권과 함께 넘겨준 것은 '경영자로서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더라도 생명에 대한 긍휼감을 잃지 말라는 유지'였다고 회고했다.

 

JW중외제약은 재정적으로 크게 어려웠던 외환위기 직후, 당진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당시 수액으로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다며 설비 투자를 말리는 직원에 이종호 명예회장은 "JW가 가진 업보"라며 강행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당진 공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1600억원이 투입됐고, 현재 연간 1억4000개의 수액제를 생산한다. 수액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수액용기 제작에도 혁신을 이뤄냈다. JW중외제약은 지난 1997년 환경 호르몬이 없는 Non-PVC 기반 설비를 국내 처음 도입했고, 2004년에는 Non-PVC계 친환경 다층필름과 용기를 자체 개발했다. 이경하 회장이 "Non-PVC가 생명이라면 어려워도 가는 것이 맞다"며 밀어부친 결과였다.

 

2022년 현재 JW중외제약은 국내 1위를 넘어 수액 시장 아시아권 1위, 세계 5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3개의 방(3 체임버)으로 나뉘어진 종합영양수액제 '위너프(WINUF)'를 개발해 아시아권 최초로 유럽 수출을 시작했고, 글로벌 최대 수액 전문사인 미국 박스터와 독점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자금은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고통받는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해 쓰여진다. JW중외제약은 Wnt, STAT 등 5가지 타깃 중심의 암·면역질환·재생의학 분야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국민을 살린 생명수'는 이제 해외로 뻗어나가며 또 다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뤄내고 있다.

 

- 당신이 심은 생명존중의 씨앗이 혁신신약으로 피어나고 있다.

 

"조금 벌더라도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구제하는 편에 서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편이 낫다. 팔기 쉬운 약을 만들기보다 환자가 필요한 약,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야 한다. 제약기업의 창업정신은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고귀한 인명의 구제에 있다. 이 숭고한 과업에 참여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고, 창립정신의 실천에 대한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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