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한숨도 못 잤다. 어제 일이 자꾸 꿈에 나올 것 같아서 무섭다"
29일 밤 핼러윈을 앞두고 열린 행사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 23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30일 오전 오른손에 빨간색 경광봉을 쥔 경찰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일렬로 나란히 서서 시민들이 사고 장소인 해밀턴 호텔 골목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전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던 젊은이들과 인근 상인들, 동네 어르신들은 노란색 출입통제선 뒤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사건 현장을 바라봤다.
이날 1번 출구 앞에서 만난 10대 한모 씨는 "핼러윈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어제저녁에 이태원에 왔다.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역 앞 삼거리로 돌아나왔다"며 "저는 좀 일찍 나온 편이라 밤 11시쯤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람들이 뒤에서 '밀자, 밀자, 밀자'라고 하면서 밀어가지고 저도 넘어졌다. 앞사람 붙잡고 겨우 일어났다. 뒷사람들은 앞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상황을 모르니까 밀리고 밀려서 많이 다친 것 같다"며 "경찰 인력을 더 많이 배치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현장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건너편인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으로 이동했다. 역 앞 길가에는 50리터짜리 일반쓰레기 종량제 봉투와 골판지 상자 40여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사고가 난 해밀턴호텔과 치과 사이 골목은 성인 7~8명정도가 나란히 서면 꽉 들어찰 정도로 폭이 좁았다. 길 양쪽 끝에는 전단지, 담배꽁초, 비닐봉지 등의 쓰레기가 잔뜩 버려져 있었다.
골목 우측에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연두색 잎이 무성한 나무가, 좌측에는 잎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건너편에는 케밥 등을 파는 터키음식점이 자리했다. 식당 안은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날 151명이 숨지고, 82명이 다친(30일 오전 9시 기준) 대참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도로 평화로운 모습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이태원역 인근 옷가게에서 20년 넘게 일한 A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압사 사고는 남의 나라 일 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젊은 애들이 죽어서 부모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며 울상을 지었다.
용산구 주민인 60대 김모 씨는 "핼러윈 때 사람이 10만명이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 수일 전부터 행정안전부, 서울시, 용산구가 안전에 대한 대비책을 의논해 이태원상인협회랑 협조하면 이런 사고가 났겠냐"며 "사전에 '핼러윈 데이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사람들한테 홍보하고 미리 주의를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너무 고통스럽고 슬프다. 종교를 초월해 사고를 당한 분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밖에 없다"며 "그분들 뿐만 아니라 딸린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한탄했다.
용산소방서 이태원 119안전센터 앞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아이씨… 어후… 어떡하지?"라는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건물 앞을 왔다갔다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굳게 닫힌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자 센터 안에서 구급대원이 나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 애가 연락이 안 돼요.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라며 울먹였다. '연락처를 남기고 가세요.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기고 직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초조하게 센터 앞을 서성이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 왔어? 아휴… 알겠어"라는 짧은 통화가 끝났다. 구급대원이 센터 안에서 종이와 펜을 가지고 나왔다. 중년 남성은 "애랑 연락됐대요. 아우 눈물 나네…"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아유. 정말 다행이네요"라고 위로를 건네자 아이를 찾은 아버지는 "저는 이제 괜찮은데 이런 큰 사고가 나서 다른 사람은 어떡한대요?"라며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부모들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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