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메모리 산업 지원 방안이 시급하긴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업계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반도체 양산에 필수적인 기술 중 상당수를 미국과 일본 장비와 소재 업계에 의존하는 상황, 소부장을 키워야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최근 반도체 장비 교역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는 지난해 반도체 장비 수입액이 250억달러(한화 약 35조원)이었다고 밝혔다. 무역 적자는 171억달러(약24조원), 1996년 통계를 시작한 이후 적자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33조7300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는 12조4100억원으로 합치면 46조원, 번 돈의 70% 이상을 다시 장비를 쓰는데 투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해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큰손'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21.7%), ASML(33.4%), 램리서치(26.8%), 도쿄일렉트론(20.4%) 등 주요 기업 매출에서 한국 비중은 중국에 이어 2위다. 중국 수출규제가 본격화하면서 한국이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장비에서 나온다. 수나노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ASML EUV 장비를 필수로 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본사 엔지니어를 불러오지 못해 차질을 빚은 일도 적지 않았다. 새로운 공정 라인을 구축하는 데에도 장비 업체와 공동 작업이 불가피. 포토 등 일부 공정에서는 양산 업체보다 장비 업체 역할이 훨씬 중요하기도 하다는 전언이다.
국내 업체들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야만 하는 이유는 기술력 차이다. 미국과 일본은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초 기술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에 탄탄한 기초 과학 육성 인프라까지 활용하면서 반도체 장비 부문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ASML도 네덜란드 기업이긴 하지만 EUV 장비에도 미국 부품이 적지 않게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이 반도체 완제품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미국 정부를 포함해 반도체 업계가 일본과 협력하려는 이유도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지난해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는 250억달러(약 35조원) 흑자를 달성했다.
5대 반도체 장비 업체가 지난해 달성한 매출액은 816억달러(약 114조원)에 달한다. 전세계 반도체 장비 총 구매금액(1027억달러)의 80%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가 지난해 매출 3조136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40%나 성장했다. 가트너에 따르면 전공정 부문에서도 글로벌 7위로 올라서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원익IPS와 테스 등 중견기업들도 꾸준히 R&D에 매진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지난 일본 수출 규제 이후부터는 민관 지원이 본격화했다.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 주도로 국내 소부장 협력사 소재와 장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됐고, 정부 차원에서도 주요 소부장 부문을 선정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기술력 확보에 나섰다. SK그룹도 SK실트론과 SK머티리얼즈 등 계열사 차원에서 반도체 소재 '수직 계열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 공정에서는 경쟁력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세메스 등 국내 장비 업계 주력 분야는 세정이나 웨이퍼 이송장비(OHT)에 그친다. 증착이나 에치 등 장비도 개발하고 있지만, 선단 공정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워 대부분 구공정이나 시험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부장 업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이라고 보고 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중은 비슷하지만, 규모가 작아 절대적으로는 크게 뒤쳐진다는 것. 이미 차이가 벌어진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인재 확보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내 반도체 산업 특성상 핵심 인력들이 대부분 양산 부문으로 몰리는 만큼, 인재 풀을 최대한 확대해야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기초과학 육성 역시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기술 특성상 다양한 융복합 과학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글로벌 주요 장비 업체들이 이미 확보한 핵심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카르텔'을 형성한 상태에서 이를 돌파하려면 전략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기술과 특허를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양산은 결국 장비와 소재 기술을 토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며 "핵심 공정까지 주도해야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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