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서 '공간'의 개념이 변했다. 과거 오프라인 매장은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경험과 체험의 장소가 됐다.
e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없앴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더 이상 다품목·저가격만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게 됐다. e커머스에 맞선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온라인으로는 할 수 없는 실제 경험과 체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3분기 실적발표 후 유통가에는 명암이 갈렸다. 2년 여만에 엔데믹(풍토화)를 맞고도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사태가 벌어지면서 업계 안팎에서 실적에 관심이 쏠렸다. 결과는 백화점의 승리였다. 롯데·신세계· 현대는 모두 지난해 3분기 대비 매출은 15~20%, 영업이익은 최대 65%(현대백화점)까지 올랐다.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항공기 운항과 해외여행으로 부진한 면세점 실적과 치킨게임을 이어가는 e커머스의 적자까지 백화점의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상쇄할 정도였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이 3분기 영업적자 150억원을 기록했지만 그럼에도 현대백화점그룹의 영업이익은 9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1% 늘었다. 롯데쇼핑도 아직 롯데온이 매출액 250억원에 영업손실 380억원을 기록했지만 백화점의 영업이익 1089억원에 힘입어 3분기 영업이익 1501억원을 기록했다.
백화점 업계의 성공의 뒷배경에는 백화점의 변화한 모습이 지목된다. 팬데믹을 지나며 백화점 업계는 30%를 넘는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대대적인 공간 변모와 대인 서비스 개선에 나섰다. 백화점 3사는 앞다퉈 공간에 예술을 접목하고 VIP 문턱을 낮추는 등 고객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쏟아냈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고객이 기대하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한데 대표적인 게 'VIP로서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VIP 기준을 낮추는 조치는 VIP 고객의 희소 가치를 훼손한 게 아니라 VIP 경험을 제공하는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은 이름에서 아예 '백화점'을 뗐다. 점포를 가득 채우고 가격할인 행사를 이어가는 대신 인증샷을 찍을 만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의 나들이 공간으로 꾸렸다. 전체 면적 2만7000평 중 51%만을 영업 면적으로 활용하며 천장과 보이드 공간을 통한 실내 채광, 지상 3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12m 높이의 인공 폭포와 수경식물 등으로 실내정원을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개점 1년만에 방문고객 3000만 명, 매출 8000억원을 낸 데 이어 연 매출 1조원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일 평균 방문객 수는 54만 명에 달한다.
공간 개념의 변화는 대형마트에서도 보인다. 대형마트 업계는 법적 규제에 묶인 것은 물론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큰 타격을 입으면서 역성장의 늪에 빠진 상태다. 그러나 각 대형마트 기업이 최근 2~3년 사이 착수한 대대적인 공간 리뉴얼에 들어간 후 재개장 점포를 중심으로 괄목할 성과가 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2월 인천간석점을 시작으로 메가푸드마켓으로의 점포 리뉴얼에 들어갔다. 새로 여는 메가푸드마켓은 비식품 영역을 크게 줄이고 식품 영역을 확대하는 것과 고객 중심 동선 개편 등을 단행했다. 그 결과 메가푸드마켓 1호점 인천간석점이 리뉴얼 첫 주말 전국 홈플러스 일 매출 1위 점포로 뛰었고 이어 문을 연 점포들 모두 매출이 최대 70%까지 올랐다.
이마트도 2020년 월계점을 시작으로 점포 리뉴얼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9곳, 2021년 19곳을 리뉴얼한데 이어, 올해는 총 10개점 가량을 리뉴얼 할 예정이다. 이마트가 2022년 4월 월계점 및 리뉴얼 오픈 점포 방문 고객을 분석한 결과, 리뉴얼 전인 20년 4월에 비해 30대 고객은 50.6%, 40대 고객은 49.8%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고객 역시 35% 가량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잠실점을 제타플렉스로 새로 열면서 스포츠 용품계의 이케아라 불리는 '데카트론(Decathlon)'과 와인전문숍 '보틀벙커'를 대대적으로 크게 배치했다. 그 결과 롯데마트에 따르면 보틀벙커가 위치한 3개 지점인 제타플렉스 잠실점, 창원중앙점, 상무점의 월 평균 매출 신장률은 500%까지 치솟았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에 비하면 오프라인 점포는 고정비 지출에 의한 가격 인하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공간 여력의 문제로 품목 수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 그럼에도 고객들이 오프라인 유통 채널에 가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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