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쇠물을 만들면서 고로 가동을 중지한건 최고 경영자의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난 23일 오전 찾은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악몽에서 벗어나 희망의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포스코는 전사적인 역량을 총 결집해 포항제철소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총 18개 압연공장 중 올해 15개를 복구할 예정으로, 현재 1열연, 1냉연 등 7개 공장이 정상가동 중이며 연내 기존 포항제철소에서 공급하던 제품을 모두 정상적으로 재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정우 회장 고로 가동 중단 '신의 한 수'
포항 철강산업단지는 대부분 정돈됐지만 수해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냉천 주변은 여전히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가 남아있었다. 하천 내 둔치공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포항제철소 펜스에는 냉천이 범람하면서 흘러나온 나무와 풀들이 부유물과 뒤엉켜 있는 안타까운 모습도 발견됐다. 침수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짐작케했다. 특히 포항제철소 건너편에 위치한 이마트 포항점은 태풍 피해로 폐업한 상태였다.
실제 포항제철소는 지난 9월 6일 태풍 힌남노에 제철소 가동 이후 처음으로 냉천이 범람하며 여의도 면적에 달하는 제품 생산 라인의 지하 Culvert(길이 40km, 지하 8~15m)가 완전 침수되고 지상 1~1.5m까지 물에 잠기는 불가항력적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철강 업계에서는 제철소를 새로 짓거나 껍데기 빼고 모두 교체해야한다. 정상화까지 2년은 소요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포스코는 두 달 여 만에 압연공장 18개 중 7개 공장을 정상 가동하는 등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최정우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1992년 포항제철소 1고로 엔지니어로 입사한 김진보 선강담당부소장은 "포항제철소 고로 첫 가동 이후 50년 동안 수백개의 태풍이 지나갔지만 고로 운행을 정지하지 않았다"라며 "고로 가동 중단하면 모든 작업을 멈춰야하기 때문에 현장 직원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반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최고 경영자의 결정은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 수 였다"며 "그때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폭발 사고는 물론 모든 장비를 교체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는 매뉴얼에 맞춰 힌남노 상륙 1주일 전부터 자연재난대책본부를 가동하고 태풍이 역대급 위력이라는 예보에 따라 하역 선박 피항, 시설물 결속, 침수 위험 지역 모래주머니·방수벽 설치, 배수로 정비 등 사전 대비 태세를 더욱 강화했다.
이와 함께 공장 침수시 화재와 폭발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포항제철소 54년 역사상 유례 없는 특단의 방재 조치를 실시했다. 포스코는 가동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 덕분에 압연지역 완전 침수에도 불구하고 제철소 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나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후 복구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포스코는 제철소의 심장인 고로 3기를 동시에 휴풍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50년의 조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쇳물이 굳는 냉입(冷入) 발생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고로를 4일만에 재가동시킬 수 있었다. 이는 세계 철강산업 역사상 보기 드문 사례로, 이후 포스코는 냉천 범람에 직격탄을 맞아 피해가 심했던 압연공정 복구에 집중함으로써 제철소 전체의 빠른 정상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임직원 '열정'…기술력으로 한계 넘어서다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가동 정상화를 시키는데 임직원들의 열정과 기술력이 담겨있다.
우선 포항제철소 가동 정상화를 위해 포항과 광양의 모든 명장과 전문 엔지니어들은 설비복구에 적극 참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조업,정비 기술력과 역량을 복구 현장에 결집시켰다. 그 결과 각 공장의 설비 구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모터는 선강 및 압연 전 공정에 걸쳐 약 4만4000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31%가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이 중 73%가 복구 완료됐다. 포스코는 당초 해당 침수 설비를 신규로 발주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제작·설치에 1년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능한 직접 복구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최대 170톤에 달하는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작업은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의 주도하에 50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력이 총 동원되고 있다. 총 47대중 33대를 자체적으로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하는데 성공했으며 나머지 모터 복구작업도 공장 재가동 일정에 맞춰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 1열연공장 정상 가동과 2열연공장 복구의 숨은 영웅은 바로 1977년 포스코에 입사해 전동기 부문 최고 기술자인 '명장' 1호 손병락 상무보다.
손 상무보는 "냉천 범람 당일 무릎까지 빠지는 물위에서 발을 구르며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을 봤다"며 "공장 가동을 멈췄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비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후배들과 현장서 복구해나갈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전기 설비는 단순 교체로 힘들고 압연기용 메인 모터는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분리해서 수리하는건 불가능했다"며 "국내외 설비 전문가와 모터 제작사조차 수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우리 기술로 복구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복구작업을 통해 우리가 설비 제작사보다 수리하는 기술역량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후배들도) 우리 기술에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냉천과 가까운 2열연 공장은 정상 가동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요소될 전망이다. 이곳은 공장 전체가 완전히 물에 잠겼으며 지하 설비에 쌓인 진흙과 펄의 높이는 30㎝에 달할 정도였다. 이날 2열연공장의 비좁은 계단을 내려가 유압유 공급 장치가 있는 지하 8m 지점에 들어서자 정화작업을 거쳤지만 물비린내와 기름 냄새 등 특유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또 여전히 바닥 곳곳에 물기와 여기저기 토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침수 당시 피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손승락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부장은 "오늘도 약 1300명의 복구 인력이 투입됐다"며 "지금은 기계나 전기 등 전문적인 정비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금까지 누적 복구 투입인원이 100만여명에 달하며 하루 평균 1만5000여명의 인원이 수해 복구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포스코그룹 경영진은 포항제철소 단독 생산 제품 및 시장 수급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압연공장 복구계획을 수립했으며, 수해 직후부터 매일 '태풍재해복구TF' 및 '피해복구 전사 종합대응 상황반'을 운영하여 현장 복구, 제품 수급 등과 관련된 이슈를 면밀히 점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려 계획대로 복구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글로벌 철강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내 포항제철소 핵심 공장인 2열연공장 복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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