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지음/서해문집
글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뒤적였는데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짧게 써라. 설명하지 말고 보여 줘라. 독자보다 먼저 울지 마라. 적은 글을 소리 내 읽어 보면서 어색한 표현을 고쳐라 등등. 분명 다른 책이었지만 목차만 다를 뿐 작법서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하는 말이 고만고만해서인지 수능 고득점자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라'는 조언만큼이나 와 닿지 않았다.
그래도 딱하나 기억에 남는 글쓰기 팁을 꼽아보자면 "잘 쓴 글을 보고 질투하고 샘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쟁을 싫어해 과거 하루 이용자가 700만명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국민 모바일 게임 '애니팡'조차 한 적이 없는 필자는 당시 이 말을 들었을 때 '음… 크게 새겨들을 만한 조언은 아니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은유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다가 '질투나게 잘 쓴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의 꽁꽁 언 바다를 깨는 도끼라야 한다'고 했는데 은유 작가의 책이 필자에게 그러했다. 서문부터 맺음말까지 모든 문장이 심장을 콕콕 찔러 전부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올드걸의 시집'은 은유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저자는 "사는 일이 힘에 부치고 싱숭생숭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시를 읽고 글을 썼다"며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 시를 핑계 삼았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회한이 쌓이고, 시집이 늘었고, 눈물이 마르고, 아이들이 커 가고, '올드걸의 시집'이 자랐다"고 이야기한다. 삶과 시의 합작품인 산문집에서는 '처마 끝에 하얀 구름이 흘러갔다. 연민 없이 15초 정도가 흘렀다', '삶에 비가 샌다' 등 곱씹을수록 단내나는 표현들을 만나볼 수 있다. 280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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