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동네 골목에 소소한 꿈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어 하는 젊은 건축가가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이준형 대표다. 그는 2014년부터 동네 골목길을 중심으로 공유공간을 만들어 어느덧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의 삶을 되살리고자 한다.
이준형 대표는 "집 밖으로 나온 우리 동네 공유공간이라는 기획 의도로 과거 집이라는 공간에서 하던 활동들을 동네라는 무대로 옮기려고 한다"면서 "집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그가 공유공간에 눈길을 두게 된 것은 청년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 시절 1인 가구 문제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청년 1인 가구가 밀집한 동네를 들여다보게 됐다. 원룸, 고시원, 셰어하우스 등이 밀집된 곳에서는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 한 끼 나눠 먹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공간이 우리 의식을 좌우한다는 말처럼, 협소한 공간들은 친한 사람과 고립된 채 생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까. 도시의 생활공간에 공동체의 공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어 먼저 공유주방이라는 컨셉을 생각하게 됐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 같이 밥도 먹을 수 있는 공유공간을 갖게 되면 한결 관계의 친밀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공유공간이라는 개념에 공감하는 친구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싶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무소를 창업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2016년에 이러한 꿈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대표는 "단순히 교통이 편리하고 임대료가 적정한 이런 사무실 얻기보다는 창업할 때도 그랬고 뭔가 건축가로서 한 동네에서 자리 잡아 우리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았지만 마땅한 데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의 추천으로 오래된 동네인 후암동에 찾아왔다가 마음에 들어 둥지를 틀었다"고 덧붙였다.
◆도시공감 첫 공유공간으로 후암주방
도시공감은 맨 먼저 후암주방이라는 4-5명이 식사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유 공간을 만들었다. 원룸과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 할 수 없었지만 후암주방에서는 친구들끼리 집처럼 밥도 해 먹고 식사도 같이 할 수 있다.
후암주방을 시작으로 서재, 거실, 별채 등을 만들었다. 도시공감은 시간대에 따라서 이용자들한테 이용 요금을 받고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공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많이 들어가면 6~8명, 적게 들어가면 2~3명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보통 2명에서 4명 단위로 이용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 대표는 "공간마다 다 다르고 시간도 조금씩 다른데 저희가 하루에 적게는 한 팀 받는 공간도 있고 많게는 한 세 팀까지 받는 공간들이 있어서 보통 한 3시간에서 5시간 정도씩은 이용자들이 그 공간에 머물면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은 공유공간을 동네의 특색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후암동에 살지 않은 사람들도 찾아와서 공유 공간을 즐기고 있다. 소위 뜬다고 하는 동네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와 이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대뿐만 아니라 40대까지 가끔 50대까지도 공유공간을 찾아온다. 후암주방 같은 경우는 20대가 제일 많다"며 "신혼집처럼 주방을 꾸미고 싶은데 결혼 전에는 그게 쉽지 않은 연인들이 많이 와서 정말 신혼집처럼 신혼 살림하듯이 뭔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식사해주고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경우들이 있다. 후암서재에는 50대 이용자분들도 오시는데 호암동에 하루 종일 머물면서 내 서재처럼 편안하게 책도 보면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시기는 재정리할 기회...후암연립 브랜드 출범
코로나 팬데믹은 도시공감이 추진했던 공유공간 사업을 되돌아볼 기회를 줬다. 집합금지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카페를 포함해 새로운 주방 공간 등을 늘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주방도 어떻게 보면 후암주방의 두 번째 버전이기는 한데 처음에 뭘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하다가 빵 만드는 것을 취미로 많이 하는 점에 착안해 그러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과 제빵에 특화된 주방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공유공간의 또 다른 변화는 욕실 전문 브랜드인 이노스와 협업한 것이다. 기존에 후암별채가 있는데 이는 집 화장실에 있는 욕조라는 것을 복리 공간의 형태로 만든 공간이다. 실제로 큰 욕조가 있어서 사람이 와서 목욕하는 1인 전용 공간이다. 이러한 컨셉과 의도를 보고 이누스가 협업을 제안해 작년에 기존의 후암별채라는 공간 외에도 후암별채 이누스라고 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2년 사이에 공유 공간이 여덟 개로 늘어남에 따라, 왜 이러한 활동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브랜드와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대표는 "저희가 주방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합할 필요가 있어 '후암연립'이라는 브랜드를 출범시켰다"면서 "이를 더 체계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 정보를 발신하는 공간으로 카페도 만들었다"고 밝혔다.
◆내 집처럼 편안했다는 얘기 힘이 된다...공유 공간 연결 고민도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결국 이용하는 사람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따라서 집 밖으로 나온 공유공간으로 이용자들이 머무는 동안 정말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렀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려고 한다.
이 대표는 "실제 이용하신 분들이 내 집처럼 편안했다거나 이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정말 좋은 추억 좋은 시간을 만들고 간다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때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공간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공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점심에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에 주방에 가서 식사를 같이 먹는다든가 아니면 서재에 있다가 주방에 가서 식사한다든지 이런 경우들도 생긴다"면서 "이에 공간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볼까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 뭔가 기획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동네를 더 재미있고 다양한 동네로 만들려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아무런 연고도 없던 후암동에 정착해 공유공간을 시작한 이 대표는 오랫동안 후암동을 지키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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