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계에 '주인 없는 기업'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세상에 주인 없는 기업이란 없다. 엄밀히 말하면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주인 없는 기업'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가 부정적이어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대상이 되는 기업들을 마치 범죄자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어떤 기업을 특정할 때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하면 웬지 주인이 없어 방만 경영을 하거나 모럴헤저드가 일어나고, 경영진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사익편취나 하는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기업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다.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임원 선임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주인이 없고 중요한 기업에 대해서 후계자 승계, 선임 절차 등이 투명한지에 대해 의견이 많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라며 "은행 시스템은 군대보다, 국방보다도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융권 지배 구조 개선에 나설 뜻을 강력하게 표출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정부 투자 기업 내지는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스튜어드십이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KT와 포스코를 겨냥한 발언도 했다.
과거부터 있어왔던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지배구조 및 CEO 선임·연임의 투명화다. 특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기능을 통해 경영을 견제하자는 게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스튜어드십(stewardship)이란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가 마치 중세 유럽에서 귀족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인데, 주로 주식을 통한 권리행사를 의미한다.
현재 정부가 손 볼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금융회사들과 KT, 포스코 등이다. 이들 기업의 특징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역할이 국가 경제나 안보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들의 경영이 제대로 되는지 감시의 수준을 넘어 간섭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KT와 포스코만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와 플랫폼 등도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다. 여차하면 삼성전자와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에도 국민연금을 통한 경영간섭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정부의 방침을 보면 예전 신권(神權) 대 왕권의 대립, 산업화 초기 국왕제와 공화정제를 두고 귀족들과 신흥자본계급들이 대립했던 역사가 떠오른다. 자본주의와 같은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고 점점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기존 세력과 신규 세력 간의 갈등이 발생했던 것처럼, 지금도 국가와 기업의 갈등이 커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신탁이나 국왕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변화를 막지는 못했다.
지금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논란이 평화적으로 이어지려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함의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갈등 역시 후일 역사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는 헤게모니 싸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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