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정부의 '쌀 의무매입 면제 조항'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조항은 극한의 여야 대치 속에서, 법안 처리 시 야당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야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정부에 재량권을 주면서 '쌀이 초과생산되면 정부가 매입해주되, 재배면적이 늘면 쌀 매입을 안 해도 된다'는 모순되는 조항이 삽입됐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정부가 공급 과잉으로 인한 쌀값 하락 시 민간의 쌀 재고를 매입(시장격리)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정을 거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 3월 23일 본회의에서 처리됐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4월 4일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한 바 있다.
◆원안에 없던 의무매입 조항
이번 수정안이 논란이 된 것은 '벼 재배면적이 전년보다 증가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매입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날(11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논쟁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은 개정안이 법의 취지대로 정부 의지로 양곡의 생산조정을 해서 벼의 초과 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줄여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재정당국의 의지에 따라서 쌀을 매입하는 지금까지의 관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의무매입 면제 조항은 중재 과정에서 정부에게 재량권을 준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정황근 장관은 "만약 재배면적이 확대되고 생산량이 늘어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가 해당 조항을 핑계로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되냐"며,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있으나 마나한 조항이라는 것이다. 대신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 등을 통해 벼 재배면적을 조정하고 쌀 소비 수단을 다양화하는 등 시장 격리(정부가 쌀을 매입해 보관하는 것)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해수위 소속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관련 기자회견에서 "2022년에 정부가 쌀을 매수할 때 시장격리를 지연하고 역공매(최저가 입찰)를 하는 과정에서 쌀값이 하락했다. 결국은 재정당국의 의지에 따라서 시행여부와 시기·방식이 결정됐을 때 그 영향(쌀값 하락)이 농민에게 가는 것"이라며 "정부가 자의적으로 시장격리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법률적 보완장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도 "양곡관리법의 기본 취지는 사전에 생산조정을 충분히 해서 정부의 의지로 쌀의 추가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농가의 소득 안정과 식량 안보 차원에서 시장에 개입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말 안돼" VS "기재부 논리에 끌려다니니"
반면, 농업경제학과 소속 A 교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쌀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국가가 매입을 해야 하니, 손실분도 보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무면제 조항이 수정 과정에서 왜 붙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매입 면제 조항에 따르면, 재배면적이 늘어날 경우 생산량이 늘어나고, 그러면 당연히 가격이 내려갈텐데, 이렇게 되면 정부가 쌀을 매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 마나한 이야기다. 양곡관리법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고 밝혔다.
민주당 농해수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의무매입 면제 조항에 대해 "대통령과 여당이 양곡관리법에 대해 의무매입은 안 된다고 하니, 정부 부담을 약하게 해서 재량권을 주자는 취지로 들어가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량권이 있든 없는 시장격리할 상황이 되면 정부가 알아서 할 것처럼 말하는데, 지금까지 정부가 알아서 안 했으니까 이렇게 개정안을 만든 것이다. 정부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농림부는 시장격리 할 때 기획재정부에서 안 된다고 하니까 반대하는 것인데, 돈 들어가는 것은 기재부가 다 쥐고 있는데 규정을 의무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결국 기재부가 의도한 것처럼 '시장 논리'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야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깔끔히 조정하지 못한 것이 서로 주장을 물고 뜯는 악순환의 원인이 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원안 속 수치는 그냥 정한 것이 아니라 농민단체와 수차례 협의를 통해서 정한 수치다. 이를 조정하니 농민단체에서도 찬성하기 힘든 법안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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