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에도 가격 경쟁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보조금 축소가 가시화된데다가, 소비자들도 현실적인 요소에 눈을 돌리면서다. 완성차 업계 '실력' 차이가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17일 '전기차 가격경쟁 시대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근 국내외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에 있어 경제적 요소를 핵심 고려 사항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시장 초기에는 친환경성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가격 경쟁력이 이를 뛰어넘었다는 것.
조사 결과 한국 소비자는 주행거리(26%)를 여전히 중요시했지만, 차량 가격(24%)도 중요한 구매 요소로 고려하고 있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미국와 일본 소비자는 가격을 가장 우선시했다.
특히 전기차 보급 단계에서는 내연차와 상대적 가격이 구매에 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혁신 확산 이론'에 따라 중국과 유럽 등 주요국가 전기차 확산 수준이 초기 수용자 단계였다며, 수년내 '전기 다수'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중화하면 가격과 '낮은 유지관리 비용' 등 실용 측면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는 것.
전기차 업계 가격 경쟁이 시작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 평가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포드와 BMW 등이 가격 인하를 발표한 상황, 수년 앞으로 다가온 보조금 폐지 및 삭감에 선제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추측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전기차 가격 경쟁이 가속화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BYD를 비롯해 중국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신차를 출시하는 상황, 테슬라가 가격을 내린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구원은 완성차 업계가 보급형 모델을 출시하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게 존폐를 가를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원이 제시한 규모의 경제 기준은 연간 20~30만대 생산, 다만 완성차 업계에서는 실제로는 연간 100만대 이상 생산 규모를 확보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100만대 이상 생산 능력을 보유한 곳은 테슬라 뿐. 중국 BYD도 올해부터 시안 공장을 증설하면서 100만대 수준 생산 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폭스바겐도 100만대 수준 양산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2025년, 기아가 2026년을 목표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IRA 등으로 당초 2030년 기준 연산 300만대 규모 였던 계획을 더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보급형 전기차 시장도 열리기 시작했다. GM은 그 중에서도 일찌감치 '3만달러' 전략을 내세우고 내연기관 모델을 완전히 전동화하겠다고 밝힌 바. 볼트 EV와 EUV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보급형 전동화 전략 모델인 이쿼녹스 EV를 출시하며 가격 경쟁에 본격 동참할 예정이다. 기아 역시 내년부터는 3000만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EV3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2만5000유로를 목표로 2024년 ID.2 올을 출시할 계획이다.
문제는 잡음 없이 전기차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 전기차 생산 방식이 내연기관과 크게 다른 탓에 산업 생태계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고, 이에 따라 완성차 업계도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기존 판매망과 서비스 네트워크를 재편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배터리 문제도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보급형 모델에는 고가의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인산철 배터리를 도입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저온 상태에서 성능 저하 논란이 남아있다. 업체별 배터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브랜드별 성능도 차이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원은 줄어든 자동차 판매 수익을 대신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까지는 개발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일부 브랜드가 특수 기능을 '구독' 형태로 판매하려 시도했지만,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계는 차량 기능뿐 아니라 커넥티드 서비스를 활용한 콘텐츠에서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 사업을 시작한 테슬라와는 달리 완성차 업계가 내연기관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며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준비까지 업체별 차이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전동화 시대에도 가격 경쟁을 지양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격 전략만으로는 확고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비가격 경쟁요소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미 럭셔리 자동차는 판매에서 보조금 영향은 거의 없었다는 분석, 앞으로도 고급화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는 가격과는 관련 없는 수요층을 보유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보급형 전기차를 낼 계획은 현재에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김재웅기자 juk@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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