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판결이 난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에 불복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금으로 배상해야할 수천억원대 비용 부담도 문제지만, 판결 근거와 법 자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아서다. 이번 판결로 외국계 자본의 소송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ISDS 중재판정부는 20일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7억7000만달러 (한화 약 1조원) 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냈다.
엘리엇은 2015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탓에 손해를 봤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ISDS는 2012년 한미FTA 체결 당시 포함됐던 대표적인 독소 조항 중 하나다.
배상액은 엘리엇이 요구한 것의 7% 남짓한 5359만달러(약 690억원), 여기에 법률비용 2890만달러(약 370억원) 등을 포함하면 약 1300억원 수준이다.
당초 소송 대비 판결 배상액만 보면 크지는 않지만, 아무 조치도 않고 혈세를 낭비할 수 없는 만큼 수긍할 수 없다는 지적이 각계서 나오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불복 절차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ISDS가 단심제라고 해도 정정 신청을 하면 배상 원금과 지연 이자를 다시 책정할 수 있어서다.
판결 자체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 것을 정부 결정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3일 공개된 판결문에 따르면 판정부는 당시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을 압박해 찬성표를 던지도록 '조치'했다고 봤지만, 법조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상법상 주주권 행사는 손해배상 책임을 발생시킬 수도 없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했다고 엘리엇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릴 수 없는 만큼, 판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ISDS를 제기할 우려도 있다. 최근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주 이익을 내세워 경영권 공격을 시도해왔던 상황, 자칫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ISDS를 염두에 두고 공격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 때문에 분쟁을 망설였던 경우에도 소송을 고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법적으로는 정부가 취소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은 양측이 동의해 영국 런던에서 진행됐다. 영국중재법 67조에 규정된 '실체적 관할 위반' 조항에 따르면 중재 판정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불공정한 차별이었는지가 핵심, 불공정 여부를 떠나 정부가 조치한 게 아니라 아예 성립이 될 수 없다.
ISDS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논란도 전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ISDS는 당초 선진국 투자자가 후진국에 투자하면서 차별로 손해를 입을 경우를 우려해 만들어졌지만, 선진국 간에는 더 강대국이 상대국가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국내 기업이 경제력이 비슷한 국가에서 불공정한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셀 수 없이 많지만, ISDS를 제기한 경우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판정이 나왔던 론스타 사건에 대해서도 정부는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 직후 정정 신청을 했으며, 1~2달 안에 취소소송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ISDS 소송과 관련해서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과 판정 내용을 분석하고 대응하겠다는 것.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하려면 다음달 18일까지 접수해야한다. 4주도 채 남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논란이 많은 판결인데 대응해보지 않는 것은 아쉽다"며 "기업 입장만이 아니라 1000억원을 훌쩍 넘는 혈세가 걸린 만큼 정부가 불복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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