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지음/비사이드
자신이 쓴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소설가가 하나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OTT 플랫폼 관계자와 만나게 된 그는 어떤 작품들이 영상화되는 거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극 초반에 사람이 죽으면 된다는 조언을 했다고.
돌이켜보니 최근 런칭한 드라마들은 모두 누군가가 죽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의 작품 '악귀'에서는 극중 주인공 구산영과 얽힌 인물 서넛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태희와 임지연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웹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중심인물들의 가족이 사망해버렸다. 두 작품 다 1, 2화밖에 방영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나가고 있다.
담당자로부터 팁을 얻은 소설가는 마라맛 3단계(최고로 매운맛) 같이 자극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전의 집필 스타일로 돌아왔다. 자기 작품의 매력은 인물들 간의 티키타카(합이 잘 맞아 주고받기가 잘되는 대화)인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글을 썼더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같아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다행히 작가의 바람대로 소설들은 현재 영상화를 앞두고 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고 하면, 부화뇌동하지 않고 우직하게 존버(존중하며 버티기의 준말)하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는 게 필요하단 것이다.
'준최선의 롱런'은 시인 문보영의 일상 존버기를 다룬 산문집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은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면서 쓴 일기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 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연습.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촌스러운 게 아니라고, 하루를 잘 살아 낸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어쩌면 이 책은 일상을 살아 내지 못하는 어느 시인의 일상 고투기인지도 모르겠다. (중략) 글쓰기, 춤추기 등 시인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덤덤히 말한다.
문보영 시인은 브이로그(영상 일기)를 보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한다. 브이로그의 매력은 별거 없는데 계속 보게 되는 것이라고. 브이로그에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하고, 지인을 만나 한잔하고, 뚜벅뚜벅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인은 "브이로그를 보면서 자극이나 현란함, 특정 주제 혹은 재미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 인간이 하루를 얼마나 평평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 냈는지 구경한다. 별일 없는 나날들에 대해, 그 무의미에 반발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라며 "어쩌면 낮은 기대치를 연습하는 게 브이로그가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200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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