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경 지음/김영사
개발자로 일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AI를 만드는 일을 하면 나중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코딩하는 AI가 등장했을 때 그는 개발자가 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친구의 일화를 들은 필자는 "것 참 딱하게 됐군..."이라는 위로 대신 "우와, 신화가 정말 끝내주는 이야기였구나!"라는 감탄을 내뱉으며 이마를 쳤다.
그리스 신화 속 등장인물 중 가장 불행한 영웅, 오이디푸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빼앗는다'는 예언을 듣고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지만, 결국 자신의 아버지인 테베의 라이오스 왕을 죽이고 친모를 왕비로 삼는다. 창조주를 넘어선 피조물의 비극은 그 형태만 다를 뿐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을 탄생시킨 인간의 목을 서서히 죄어오는 AI도 그 중 하나.
'나를 위한 신화력'은 작가가 신화를 읽고 어떤 통찰을 얻게 됐는지 궁금해 집어든 책이다. 저자는 "신화에는 신과 영웅이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갖고 온몸을 부딪쳐 얻은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다. 구하고자 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만능키다"고 말한다.
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스핑크스는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낮에는 두 다리로,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오이디푸스는 "사람"이라는 답을 내놓아 스핑크스를 죽게 만든다.
저자는 선인들이 왜 오이디푸스 이전에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한 것으로 상황을 설정한 건지를 궁금해하다가 문제의 답이 '사람'인데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고(思考)'나 '사유(思惟)' 같은 개념이 필요치 않았다. 어려운 일들은 다 지도자가 해결해줘서다.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왕에게 쫓아가 해결해달라고 요청했고, 군주는 이를 들어줘야 했다.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었다. 허나 당시엔 왕들조차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신전으로 달려가 신탁을 물었다. 이런 시대에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푼 것이다.
사고하는 사람, 오이디푸스의 등장으로 신탁이 아닌 철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책은 설명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진정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는가.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유혹을 물리친 뒤 무엇을 원하고 언제 행동해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인가를. "스핑크스는 살아 있다. 그의 발아래 무수한 시체들, 사람이라고 답하지 못해 살해당한 시체들로 오늘도 탑은 높이 올라간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356쪽.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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