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영웅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도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그저 남들보다 이타심과 희생 정신이 투철했을 뿐. 꼭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누구라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LG그룹의 LG복지재단은 10년 가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캡틴 코리아'를 찾고 있다. 'LG의인상'을 통해서다. 최근까지 197명을 선정했다. 벌써 200명을 눈 앞에 뒀다. '의인'이라는 단어가 LG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표적인 상이 됐다. 이후 여러 단체와 기업들이 비슷한 상을 만들었지만, LG의인상은 여전히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 "정의가 살아있어야"
'국가와 사회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살아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가 인간다운 온기로 지켜지는 것은 공동체와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 故 구본무 회장은 창업주인 故 구인회 회장부터 이어온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를 지키기 위해 LG의인상을 제정했다.
구본무 회장은 일찌감치 그룹 차원에서, 또 개인적으로도 의인을 찾아 작은 선물을 전달해왔다. 2013년 바다에 시민을 구하다 순직한 인천강화경찰서 소속 故 정옥성 경감 유족과 2015년 지뢰 폭파로 다리를 잃은 1사단 소속 김정원 하사 및 하재헌 하사에 위로금을 전달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은 여러가지 문제로 위로금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LG의인상을 정식으로 제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2015년 화재 사고에서 목숨을 걸고 밧줄을 걸어 10명을 구했던 '동아줄 의인'이 익명으로 전달하려던 성금을 사양한 것도 LG의인상 제정에 힘을 더했다.
이에 따라 LG는 2015년 9월 처음 LG의인상을 제정하고 故 정연승 상사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故 정 상사는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던 중 신호를 위반한 트럭에 치어 운명을 달리했다. 생전에 장애인 시설과 양로원 등에서 봉사를 하고 결식 아동과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매달 10만원씩 후원을 이어왔던 선행도 확인되며 사회를 안타깝게 했다.
구본무 회장은 2018년 5월 15일 브레이크 고장으로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차량을 자신의 차량으로 용감하게 막아선 한영탁 씨에 마지막 LG 의인상을 전달하며 우리 사회를 지켜온 영웅 72명에 감사를 전했다. 갑작스럽게 별세하기 불과 5일 전이다. LG복지재단에 20억원을 따로 출연했던 것도 뒤늦게 알려졌다.
◆ 선행이 선행으로
LG의인상이 시작한 이후 사회적인 선순환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회의가 커지던 당시, LG의인상으로 선행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 LG의인상 수상자와 주변사람들을 통해 또다른 기부와 나눔이 시작됐고, 지금까지도 LG의인상 수상자들이 회자되며 많은 사람들이 본받고 있다.
LG의인상 수상자 중 상당수는 상금을 다시 기부하며 선순환을 확대하고 있다. LG에 따르면 상금을 다시 기부한 수상자는 확인된 것만 35명으로, 여러 수상자가 비공식적으로도 나눔을 확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이상 폐품을 수집해 지역 사회를 도와 2021년 11월 LG의인상을 수상한 박화자 씨는 상금 전액을 경기도 화성 마도면에 기부했다. 최근 암투병을 시작하면서 폐품을 모으지는 못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폐품 수집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25년간 헌혈증을 백혈병 어린이에 기부한 권재준 중앙해양특수구조단 경위도 2021년 10월 받은 LG의인상 상금 전액을 또다시 한국 백혈병 소아암협회 광주지회에 기부했다.
그 밖에도 신동환 경감과 우영순 씨, 전옥례 씨 등 LG 의인상 수상자들이 받은 상금 일부를 또다시 사회에 환원하며 선순환에 동참했다.
전옥례씨는 "38년 간 위탁모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동방사회복지회의 도움이 컸다"라며 "기부금이 입양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부를 받은 동방사회복지회 김진숙 회장도 "위탁가정에서 30년 넘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우리 기관에서 그동안 충분히 보상해드리지 못한 것을 LG가 대신 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며, 기부금은 입양아들을 위해 뜻 깊은 곳에 사용할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 구광모 회장 계승·발전
구본무 회장이 LG의인상을 제정해 정착시켰다면, 계승해 발전시킨 것은 구광모 회장이다. 구광모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LG의인상이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만, 구광모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9년부터 오히려 시상 범위를 살신성인 뿐 아니라 묵묵히 선행과 봉사로 귀감이 된 시민들로 확대했다. '진심이 담긴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더 다가가자'는 뜻에 따른 조치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마련해 생존이 위태로운 신생아 1500여명을 구한 이종락 목사였다. 아기를 맡아주는 것은 물론 보호자와 인연을 이어가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부부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신신예식장도 LG의인상 장기 선행 시상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2021년 당시 89세였던 故백낙삼 대표는 1967년 3층짜리 건물을 예식장으로 운영하며 1만4000쌍 부부에 무료 예식을 선물했다. 지난 4월 별세하면서 신신예식장도 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아들인 백남문 씨가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남문 씨는 최근 한 인기 방송에 나와 많은 사람들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밖에도 28년간 미용 봉사를 이어온 이예분 씨와 24년간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헌신한 이정아 씨 등 사회에 어두운 곳을 밝혀왔던 영웅들이 LG의인상으로 조명을 받았다.
이에 따라 '장기 선행' 분야에서만 28명 수상자가 나왔다. 2019년 이후 전체 수상자 중 4분의 1수준이다. 덕분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도 오랫동안 사회에 헌신해온 영웅들도 새로 발굴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 조용한 선행 이어간다
영웅이 한국인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2017년 스리랑카 니말 씨에 이어 2020년에는 카자흐스탄 국적 알리 씨가 화재가 난 원룸 건물에서 중증 화상을 입으면서도 주민 10명을 구해냈다.
니말과 알리는 불법체류 중이었음에도 신분이 탄로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해냈다. 당시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우려도 커지던 상황, LG의인상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었다.
LG의인상은 지난주까지 197명이 선정됐다. 2019년 100명째가 선정된 이후 4년여 만에 다시 200명 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로운 역사이지만, LG는 이번에도 조용히 감사를 전할 계획이다. LG의인상이 자칫 사회공헌이라는 순수한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다.
LG 관계자는 "200명째 LG의인상이 의미가 크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이 조용히 감사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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